조선 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79년(선조 12)에 현감 조목(趙穆)이 중건하였고, 1925년에 군수 서병린(徐丙麟)이 중수하였다. 1950년에는 향교내에 봉성고등공민학교(鳳城高等公民學校)를 설치하였다가 1975년에 폐교되었다.
학교로 사용하는 동안 크게 훼손된 것을 1975년에 군수 권명흠(權明欽)과 전교(典校) 이성호(李成鎬)의 노력으로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팔작지붕에 홑처마로 된 6칸의 명륜당, 5칸의 동재(東齋), 4칸의 서재(西齋), 6칸의 누각, 내삼문(內三門), 유교문(由敎門), 주사(廚舍) 등으로 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소장전적은 거의 산실(散失)되었으며, 《봉화향교임록 奉化鄕校任錄》 · 《입재록 入齋錄》 · 《사마록 司馬錄》 · 《향교원임록 鄕校原任錄》 등은 이 지방 향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현재 전교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