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상금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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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 화장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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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 화장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해발 100m 정도의 산지 서쪽 기슭에 50여 기가 남면한 상태로 무리지어 있다. 할석조 돌방무덤[割石造石室墳]·괴석조 돌방무덤[塊石造石室墳]과 판석조 돌방무덤[板石造石室墳]이 반반씩 섞여 있다.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약 200m 거리에는 가증천(佳增川)이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비교적 넓은 계곡평야가 서쪽으로 가증천을 따라 펼쳐지면서 가증리의 평야에 연결돼 금강안(錦江岸)에 이른다.

또 고분군의 뒤에 있는 북쪽의 산을 주산(主山)으로 해 동남·남·서남으로 여러 개의 지맥(支脈)이 뻗어 있다. 각 능선은 서로 100∼200m의 거리를 두고 서로 동 청룡, 서 백호의 형국(形局)을 이루고 있다. 이는 사신사상(四神思想)을 묘지 선정에 반영한 것이다.

내용

판석조 돌방무덤인 상금리 1호분과 할석조 돌방무덤인 상금리 2호분을 통해 상금리고분군의 묘실 구조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제1호분은 묘실 방향이 남향으로서 서쪽으로 약 5° 가량 기울었다. 묘실의 전체 길이는 3.75m이다. 널방[玄室]은 길이 3.1m, 너비 1.32m, 벽 높이 85㎝, 천장 높이 1.14m이다. 널길[羨道]은 길이 58㎝, 너비 77㎝, 높이 73㎝이다. 동벽과 서벽에 각각 3, 4매의 판석을 세웠으며, 널길은 동쪽으로 치우쳐 있다.

제2호분은 묘실의 방향이 서남향으로서 서쪽으로 약 40° 가량 기울었다. 묘실의 전체 길이는 3.20m이다. 널방은 길이 2.42m, 너비 1.23m, 벽 높이 84㎝, 천장 높이 1.05m이다. 널길은 길이 78㎝, 너비 85㎝이다.

대체로 판석조 돌방무덤은 지하식, 할석조 돌방무덤은 반지하식의 구조로, 상금리고분군도 예외는 아니다. 또 판석조 돌방무덤의 천장형태는 대부분이 꺾임천장식[平斜天障式]이며, 할석조 돌방무덤은 대부분 궁륭식천장(穹窿式天障)이다.

이 화장묘는 노쇠한 암반층을 원형으로 지름 55∼60㎝, 길이 35∼40㎝ 규모로 판 뒤, 벽에는 3매의 판상석(板狀石)을 정립(鼎立)하고, 그 안에 토기호(土器壺) 외호(外壺)를 바로 세워 안치한 다음, 외호 안에 다시 내호(內壺)를 넣었다.

이렇게 내호와 외호를 사용한 방식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경주 지방에서 다수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경주 지방은 측석(側石)과 외호(外濠) 대신 석함(石函)을 사용한 점이 다르다. 개석(蓋石)은 3매를 올려 놓았다. 이것을 받치고 있는 측석과 토기와는 약간의 간격이 있다. 출토 유물은 장골용기(藏骨容器)로 사용한 토기 2점뿐이다.

한편, 상금리고분군의 남쪽에는 청마산성(靑馬山城)이 위치해 양자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또 상금리 산27―1에 있는 해발 200여 m의 매봉에서는 백제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묘(火葬墓)가 발견되어 상금리고분군과 무관하지 않다.

참고문헌

『백제고분연구』(강인구, 일지사, 1977)
집필자
강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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