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면서 지방도시에서도 여성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와 학교가 활발히 설립되었는데, 1909년 대구에서 여자교육회를 발기, 조직한 바 있는 김화수(金和秀)가 주간에 공부하기 어려운 부인을 위하여 이 학교를 설립하였다.
교사(校舍)는 대구사립달서여학교(大邱私立達西女學校)를 빌려 사용하였다. 이는 대구사립달서여학교가 재정난에 봉착했을 때 김화수가 여자교육회를 조직, 100여 회원으로부터 거둔 의연금을 이 학교에 기부찬성(寄附贊成)한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립 1개월 만에 부인학생 수는 20여 명에 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