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시대 철도부설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며 부산경무관(釜山警務官)을 지낸 박기종(朴琪淙)과 윤기영(尹基永) 등이, 개항장 부산으로 유입되는 화물의 집합지인 하단포(下端浦)와 부산 간의 철도 부설을 목적으로 조직한 한국인 최초의 민영 철도회사이다.
1897년 9월박기종 등은 하단포와 부산 간 약 6㎞의 노선에 경편철도(輕便鐵道)의 부설허가를 농상공부에 청원했으나, 서류 미비를 이유로 기각되었다. 1898년 5월, 박기종과 윤기영은 미비 서류를 구비하고, 청원서와 회사의 정관 및 시공계획서를 첨부, 재차 농상공부에 허가를 신청해 부설허가를 받았다.
이로써 회사도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임원은 도사장 이재순(李載純), 사장 안경수(安駉壽), 부사장 민영철(閔泳喆), 경무원(經務員) 박기종 등이었다. 회사형태는 심식회사(枔式會社 : 지금의 주식회사)로 하고, 자본금은 10만5000여원(元)으로 했으며, 이를 4,220심(枔 : 지금의 株)으로 나누며, 필요에 따라 증자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사는 부산항에, 지사는 하단포에 두었다. 부산∼하단포간 철도부설 경비는 총 10만 5061원 37전 7리로 계상하였다., 그 중요 내역은 용지비(用地費) 1만 4243원 31전 1리, 공절비(工切費) 5413원 60전, 궤도비(軌道費) 1만 7344원 46전 4리, 정차비(停車費) 1만 2540원, 차량비 2만 1800원, 기계장비 1만 900원 등이다.
주식을 100원주와 25원주로 나누어 판매하자, 서울과 인천에서 이 사업에 찬동하는 사람이 많아 100원주는 41명이, 25원주는 6명이 구입하였다. 회사가 설립된 뒤 부산∼하단포간 노선에 대한 여러 차례의 측량이 실시되었으나, 공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자금 부족을 들 수 있다. 박기종은 이 철도 부설을 위해 많은 사재와 자금을 끌어들였으나 결국 많은 부채만을 짊어졌다.
둘째, 부산∼하단포 간 노선이 채산이 맞지 않는 노선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초 박기종은 필요성만 따졌지 수지타산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셋째, 경부선 부설이 계획되었기 때문에 부산∼하단포 간 철도 부설이 무의미해졌다는 점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