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본. 1784년에는 신여철의 후손 신대겸(申大謙)에 의하여 중간되었다.
이 책은 원래 광해군 때 함경도 평사(評事)로 있던 이식(李植)이 북로(北路)의 사실과 형요(形要)를 모아 북관지라 이름하여 기술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이것을 그의 아들 이단하(李端夏)가 평사로 가 있으면서 완성은 하였지만 간행하지 못하였는데, 30년이 지난 뒤 신여철이 바뀐 연혁을 증수하여 간행한 것이다.
내용 구성은 함경도 십부(十府)의 읍지를 개괄한 것으로 상권에 경성(鏡城)·길주(吉州)·명천(明川)·부령(富寧) 등 4개 부와 하권에 회령(會寧)·무산(茂山)·종성(鍾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 등의 6개 부의 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원(官員)·강계(疆界)·산천(山川)·관방(關防)·해진(海津)·성곽(城郭)·봉수(烽燧)·관우(館宇)·학교(學校)·이사(里社)·역원(驛院)·사묘(祠廟)·불우(佛宇)·고적(古蹟)·성씨(姓氏)·인물(人物)·토산(土産)·풍속(風俗)·관안(官案)·호액(戶額)·전안(田案)·재곡(財穀)·공안(貢案)·진상(進上)·약재(藥材)·병안(兵案)·이안(吏案)·천안(賤案)·제영(題詠)·잡기(雜記) 등이 차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관방·해진·성곽·봉수조 등은 변경 방비책에 관한 것으로 다른 항목보다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물조엔 각 지방에서 효자·열녀·충신·유생·문과(文科) 등으로 세분하여 기록하고, 토산조에는 농산·해산 등 중요 생산품명을 기재하였다. 관안조에는 이곳을 거쳐간 도순문찰리사(都巡問察理使)·도절제사(都節制使)에서부터 도사·판관에 이르기까지 기재되었다.
또한 병안조에는 우청군(右廳軍)·무학(武學)·갑사(甲士)·보병(步兵)·봉군(烽軍)·위군(衛軍)·병영군(兵營軍) 등에 대한 내력과 숫자가 밝혀져 있다. 제영조에는 이곳의 사정과 풍물을 읊은 병사들의 시를 모았고, 잡기조엔 각 부에서 일어난 고사·일화·외적침입사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전래되고 있는 읍지가 대부분 고종 때 편찬된 것이거나 연대 미상의 필사본인 데 비하여, 간행 연도가 뚜렷한 목판본으로 단일 지방 읍지가 아니라, 함경남북도 전역의 읍지로서 당시 관북 지방의 지방행정실태·제도·역사·인물·풍속·자연 등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문헌으로는 ≪북로기략 北路紀略≫·≪북관기사 北關紀事≫·≪북여요선 北輿要選≫·≪북정일기 北征日記≫·≪북관읍지 北關邑誌≫ 등이 있으나 북로의 관계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이므로 이 책이 가지는 자료적인 가치는 매우 크며, 동시에 조선 시대의 북로 정책에 관하여 참고할 수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