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대아찬(大阿飡)이었다. 551년(진흥왕 12)에 대각간(大角干) 거칠부(居柒夫)·구진(仇珍), 각간 비태(比台), 잡찬(迊飡) 탐지(耽知)·비서(非西), 파진찬(波珍飡) 노부(奴夫)·서력부(西力夫), 아찬(阿飡) 미진부(未珍夫) 등과 함께 고구려를 침공하여, 철령 이남에서 죽령 이북에 소재한 한강 상류지역의 10군(郡)을 공취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 551년에 대아찬이었던 그의 관등이 단양적성비(丹陽赤城碑)에는 그보다 낮은 아찬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은 신라의 죽령 이북 진출이 551년 이전임을 시사해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이에 따라 『삼국사기』에 보이는 10군 공취기사는 551년에 모두 경험한 일이 아니라, 이전부터 점령해 나갔던 철령 이남과 죽령 이북의 10개 군 점령을 매듭지었다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