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사경(寫經)을 실시한 장소이자 기관.
#내용 사경(寫經)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을 베껴 적는 것이다. 오자나 탈자가 없어야 하므로 고도의 집중력과 장기간의 제작 시간이 필요하다. 승려나 재가 신도들에 의해 많은 사경이 이루어졌고, 전문적으로 하는 승려인 사경승(寫經僧)이 등장하였다.
사경의 구성은 표지, 변상도(變相圖), 본원경, 조성기로 크게 구분된다. 사경지(寫經紙)의 원료인 닥나무의 재배에서부터 사경이 완료될 때까지의 사경 제작의 자세와 의식이 자세하게 구성된다. 필사(筆師, 寫經僧, 經生)는 사경소(寫經所)에서 엄숙하고 장엄한 의식 절차를 따라 진행되었다.
전문 사경승들은 사경원 또는 사경소에서 사경하였다. 종이 만드는 지작인(紙作人), 사경하는 필사자(筆寫者), 축심을 만드는 경심장(經心匠), 변상도를 그리는 화사(畵師), 불경의 표제를 쓰는 경제필사(經題筆寫) 등으로 업무를 분담하여 사경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국보)이다. 이 사경은 국가적인 사업은 아니었다. 화엄사가 창건된 해인 754년(경덕왕 13)에서 755년 사이에 고승 연기(緣起)의 개인적 발원에서 제작되었다. 경주의 사경소에서 초빙한 사경사는 국찰인 황룡사의 고승이자 화엄종의 저명한 조사(祖師)였으며, 그들의 최고수준이 화엄경 제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였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 사경 관련 기록이 27건이 전한다. 1101년(숙종 6)에 왕이 일월사(日月寺)에 행차하여 『금자묘법연화경(金字妙法蓮華經)』의 사경을 제작하여 경축하였다. 1157년(의종 11)에 의종과 왕비 김씨가 원자가 태어나기를 빌어 흥왕사(興王寺)에서 『금은자화엄경(金銀字華嚴經)』을 사경하였다. 1181년(명종 11)에 사경원에 불이 났으며, 염승익(廉承益)이 그의 집 일부를 희사하여 대장 사경소를 만들었다. 1312년(충선왕 4) 궁궐을 희사하여 만든 민천사(旻天寺)에서 모후(母后)를 위하여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을 사경을 제작하였다. 충렬왕과 충숙왕 및 충선왕 때에 금자원(金字院)과 은자원(銀字院)이라는 사경소가 있었다. 의종대까지는 금자원과 은자원에서 사경을 제작하다가, 국가적 차원에서 송과 요나라로부터 『대장경』을 수입하여 조판하고 금자 사경과 은자 사경을 제작하였다. 고려 사경의 발문에 의하면, 불교의 한 종파인 유가종(瑜伽宗)의 승려 뿐만 아니라 모든 종파에서 사경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단연 원나라 사경을 주도한 것은 유가종승이다. 유가종 고승 혜영(惠永)은 1290년(충렬왕 16) 사경승 100여 명을 거느리고 중국에 건너가 세조에게 『金字法華經』을 바쳤다. 혜영은 1291년 금자 대장경의 필사 작업을 마치고 그 이듬해 귀국 후 국존(國尊)의 자리에 오르는 등 고려말 유가종 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조선 전기인 1425년(세종 7) 사헌부에서 『법화경』을 금과 은으로 쓴 사경승 성준(性濬)과 작두승 신생(信生)을 금령 위반으로 보고한 기록이 전한다. 세조는 1457년에 의경 세자가 죽자 내경청(內經廳)을 설치하여 불경을 필사하고 편찬하게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억불 시책으로 사경원과 사경승이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
- 『동사열전』
- 『高麗墓誌銘集成』
단행본
- 권희경, 『고려사경의 연구』 (미진사, 1986)
- 『(伽山)佛敎大辭林』 12(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10)
논문
- 권희경, 「寫經院과 廉丞益 發願의 寫經 ‘妙法蓮華經’ 7권본 1부」(『한국기록관리학회지』 3-1, 2003)
- 문명대, 「신라화엄사경과 그 변상도의 연구」(『한국학보』 14, 일지사, 1979)
- 황수영, 「신라·고려사경의 일고찰」(『한국불교미술사론』, 민족사, 1987)
- 황인규, 「여말선초 유가종승과 불교계의 동향」(『고려후기 조선초 불교사 연구』, 혜안, 200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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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경전의 내용이나 교리, 부처의 생애 따위를 형상화한 그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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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신라 경덕왕 13년(754)에 시작하여 그 이듬해에 완성한 화엄경의 필사본. 두루마리 2축(軸)으로, 황룡사(黃龍寺)의 연기 법사(緣起法師)가 그의 부모를 위하여 발원하여 만든 것으로, ≪신역(新譯) 화엄경≫ 제44권과 45권을 닥나무 백지에 붓글씨로 적었다. 우리나라 국보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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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어떤 학파를 처음 세운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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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어떤 목적을 위하여 기꺼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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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임금의 어머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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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고려ㆍ조선 전기의 법계(法階) 가운데 하나. 법계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으로, 고려 말에 국사(國師)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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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 전기에, 불경(佛經)을 필사(筆寫)ㆍ편찬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세조 때 왕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궁중에 설치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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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불교를 억제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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