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20년(중종 15) 명륜당을 보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2년(광해군 4)에 중건되었다.
1826년 정우용(鄭友容)이 대성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이 때 풍화루(風化樓)와 흥학당(興學堂)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5칸의 풍화루,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지내는 곳인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기록상에는 원래 동 · 서재와 사당인 동 · 서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향교가 교육의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5량구조의 익공집이며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6량구조의 주심포집이다.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3량구조의 솟을삼문으로 대성전 앞에 위치하며, 풍화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홑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이고 마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모임지붕이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두어 명이 운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