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석문’이라고도 한다. 이 무늬는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에 주로 나타나는 것으로, 진흙으로 토기(土器)를 만들 때 새끼 등을 감은 두들개[拍子]로 두드림으로써 그 흔적이 겉면에 부수적으로 나타나 무늬를 이루는 것이다.
이른바 김해토기(金海土器)에는 이러한 삿자리무늬와 격자(格子)무늬가 주를 이루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삿자리무늬가 처음에는 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된 무늬였으나, 차츰 미적인 의장성(意匠性)이 가미되어 의도적으로 두들개에 파는 홈[線刻]이나 감는 새끼의 깊고 얕음, 굵고 가늚으로 장식적인 무늬를 만들어 갔으며, 나아가 시문(施文) 기법도 다양하여졌다.
한 예로서, 다 만든 삿자리무늬의 토기면에 대칼 등으로 그 무늬를 지우듯 아주 좁고 얕은 띠선[帶線]을 둘러놓고 있는 특징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늬는 우점(雨點)무늬로까지 발전하여 고려의 상감청자(象嵌靑磁)와 조선 초기의 인화문 분청사기(印花文粉靑沙器)에 유행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목가구에서도 삿무늬를 짜 엮어서 문짝에 덧붙여 장식 한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일본민예관(日本民藝館)에 소장되어 있는 '삿자리 3층 주칠책장(網代朱漆塗三層欌)'에서 이러한 예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