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불법을 펼치기 위해 명나라로 들어간 승인.
주요 활동
기존에는 중국에 건너간 승인이 상강(尙强)으로 알려지기도 하였고, 이 사건의 성격을 태종의 배불 정책을 명 황제에게 알려 지원을 받으려 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상강은 적휴의 당제(堂弟)로, 적휴 등이 중국으로 건너간 것이 알려지자 의금부에 하옥된 인물일 뿐이다.
그리고 적휴가 요동 도사에게 올린 글에 따르면, 적휴 등은 정광여래(定光如來)의 사리 2개, 왕사(王師) 나옹(懶翁)의 사리 1개를 가져가 바치면서 명나라에서 불법을 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였을 뿐이다. 태종이 승정 체제를 개혁하며 불교계에 대한 지원을 크게 감축하자 중국에 건너간 것일 수는 있으나, 조선의 불교 정책에 대한 명나라의 개입을 요청하기 위해 갔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적휴 등이 중국으로 건너간 사실을 과장되게 해석하여 온 것은, 일제 관학자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의 『이조불교(李朝佛敎)』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카하시는 적휴의 사례와 함께 1419년(세종 1) 승인 30명이 도망하여 중국에 들어간 사건에 대해 거론하면서, ‘직접 명나라 수도에 가서 조선의 불교 박해의 정상을 상소하여 이 문제에 간섭해 줄 것을 요청한 사건’이라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1419년 승인 30명이 중국에 건너간 사건의 경우에도, 『세종실록』의 해당 기사에 의하는 한,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가서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승정 체제 개혁에 따른 사사전(寺社田) 혁파 등을 원망하여 승도가 중국에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임을 당시 상왕인 태종이 우려했을 뿐이다.
조선시대 불교 정책과 제도가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에 의해 잘못 파악되거나 과장 서술됨으로써, 조선시대 역사상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 『세종실록(世宗實錄)』
단행본
- 김용태, 『조선 불교사상사』(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21)
- 高橋亨, 『李朝佛敎』(大阪: 寶文館, 1929)
논문
- 손성필, 「사찰의 혁거, 철훼, 망폐: 조선 태종, 세종대 승정체제 개혁에 대한 오해」(『진단학보』 132, 진단학회, 2019)
- 손성필, 「조선 태종, 세종대 ‘혁거’ 사찰의 존립과 망폐: 1406년과 1424년 승정체제(僧政體制) 개혁의 이해 방향과 관련하여」(『한국사연구』 186, 한국사연구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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