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렵문(諫獵文)’이라고도 한다. 내용은 왕이 사냥하기를 좋아하므로 이를 말리기 위하여 간(諫)한 것이다. 『삼국사기』 열전(列傳) 김후직조에 실려 있으며, 『대동문수(大東文粹)』 등 문선집(文選集)에도 ‘상진평왕서’라는 제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통일신라 이전의 글은 현재 몇 편밖에 전하지 않으므로, 「청개정국호 겸 상왕호서(請改正國號兼上王號書)」·「진흥왕순수비문(眞興王巡狩碑文)」 등과 더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후직은 지증왕의 증손으로 진평왕을 섬겨 이찬(伊飡) 벼슬에 올랐다가 병부령(兵部令)
으로 전임되었다.
왕은 지나치게 사냥을 좋아하여 김후직이 그만두기를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김후직이 병으로 죽게 되자 그의 세 아들을 불러 놓고, “내가 남의 신하가 되어 대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죽어서라도 대왕을 깨닫게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나의 뼈를 대왕이 사냥다니는 길가에 묻으라.”고 하였다.
그 뒤 왕이 사냥을 가는데 길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므로 신하들이 가지 말기를 청하였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신하들이 “후직 아찬의 묘에서 나는 것입니다.”라 하고 김후직의 유언을 전하니, 왕이 울면서 “그 사람의 충간(忠諫)은 죽어서도 잊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토록 깊구나!” 하고 종신토록 사냥을 하지 않았다 한다.
짧은 글이기는 하나 이를 통하여 김후직의 충정을 엿볼 수 있으며, 문장 또한 꾸밈이 없이 소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