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자

  • 언론·출판
  • 개념
1792년에 규장각에서 정조의 명을 받아 만든 목활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심우준 (전 중앙대학교, 서지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어정인서록 미디어 정보

어정인서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792년에 규장각에서 정조의 명을 받아 만든 목활자.

내용

청나라의 사고전서취진판(四庫全書聚珍版)식을 본떠 강희자전자(康熙字典字)를 자본(字本)으로 황양목(黃楊木)을 사용해 만들었다. 이 활자는 대자(大字) 15만7200자와 소자(小字) 14만4300자를 조성(造成)하였는데, 그 중 반은 규장각에서 만들고 나머지는 평양에서 만들었다.

이 활자는 정성스럽게 도각(刀刻)한 인서체(印書體)로, 그 중 대자는 자체가 넓적하고 자획이 굵은 것이 특징이며, 정리자(整理字)의 자본이 되었다. 그 인본(印本)으로서는 ≪생생자보 生生字譜≫와 ≪어정인서록 御定人瑞錄≫이 있다.

≪생생자보≫ 1책은 활자를 주성한 바로 그 해에 ≪강희자전≫의 예를 따라 생생자의 자종(字種) 및 자수(字藪)를 기록한 자보이다. ≪어정인서록≫ 4권 2책은 1794년 홍낙성(洪樂性)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 간행하여 경외(京外) 및 교열한 여러 신하에게 반사(頒賜)한 책이다.

내용은 그 해에 영조비 김씨(英祖妃金氏)는 50세, 장헌세자빈 홍씨(莊獻世子嬪洪氏)는 60세에 이르렀고, 정조가 즉위한 지 19년이 되므로 축하의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잔치에는 조관(朝官)으로 70세 이상, 그리고 백성들 중에서는 80세 이상 또는 80세 미만의 부처해로자들에게 작위를 주었으며 그 대상자가 7만5145명이었다. 이들을 추은자(推恩者)와 해로자(偕老者)로 분류하여 기록한 것이다.

이 활자는 주성된 3년 후 이를 자본으로 한 정리자가 주성됨으로써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였으며, 1857년(철종 8) 10월 15일 백야(白夜)에 빈전도감(殯殿都監)에서 불이 나 판당고(板堂考)가 연소(延燒)되는 바람에 다른 여러 활자와 함께 거의 다 소실됨으로써 이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활자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판당고 주자소응행절목(板堂考 鑄字所應行節目)』

  • - 『군서표기(群書標記)』

  • - 『어정인서록(御定人瑞錄)』

  • - 『한국고인쇄기술사』(김두종, 탐구당, 1974)

  • - 『한국전적인쇄사』(천혜봉, 범우사, 1990)

  • - 『내사이성식고문서투식연구』(三先0xF873俊, 일지사, 1990)

  • - 「조선후기의 주자인쇄」(김원룡, 『향토서울』7, 195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