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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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인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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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에 규장각에서 정조의 명을 받아 만든 목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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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92년에 규장각에서 정조의 명을 받아 만든 목활자.
내용

청나라의 사고전서취진판(四庫全書聚珍版)식을 본떠 강희자전자(康熙字典字)를 자본(字本)으로 황양목(黃楊木)을 사용해 만들었다. 이 활자는 대자(大字) 15만7200자와 소자(小字) 14만4300자를 조성(造成)하였는데, 그 중 반은 규장각에서 만들고 나머지는 평양에서 만들었다.

이 활자는 정성스럽게 도각(刀刻)한 인서체(印書體)로, 그 중 대자는 자체가 넓적하고 자획이 굵은 것이 특징이며, 정리자(整理字)의 자본이 되었다. 그 인본(印本)으로서는 ≪생생자보 生生字譜≫와 ≪어정인서록 御定人瑞錄≫이 있다.

≪생생자보≫ 1책은 활자를 주성한 바로 그 해에 ≪강희자전≫의 예를 따라 생생자의 자종(字種) 및 자수(字藪)를 기록한 자보이다. ≪어정인서록≫ 4권 2책은 1794년 홍낙성(洪樂性)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 간행하여 경외(京外) 및 교열한 여러 신하에게 반사(頒賜)한 책이다.

내용은 그 해에 영조비 김씨(英祖妃金氏)는 50세, 장헌세자빈 홍씨(莊獻世子嬪洪氏)는 60세에 이르렀고, 정조가 즉위한 지 19년이 되므로 축하의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잔치에는 조관(朝官)으로 70세 이상, 그리고 백성들 중에서는 80세 이상 또는 80세 미만의 부처해로자들에게 작위를 주었으며 그 대상자가 7만5145명이었다. 이들을 추은자(推恩者)와 해로자(偕老者)로 분류하여 기록한 것이다.

이 활자는 주성된 3년 후 이를 자본으로 한 정리자가 주성됨으로써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였으며, 1857년(철종 8) 10월 15일 백야(白夜)에 빈전도감(殯殿都監)에서 불이 나 판당고(板堂考)가 연소(延燒)되는 바람에 다른 여러 활자와 함께 거의 다 소실됨으로써 이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활자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철종실록(哲宗實錄)』
『판당고 주자소응행절목(板堂考 鑄字所應行節目)』
『군서표기(群書標記)』
『어정인서록(御定人瑞錄)』
『한국고인쇄기술사』(김두종, 탐구당, 1974)
『한국전적인쇄사』(천혜봉, 범우사, 1990)
『내사이성식고문서투식연구』(三先0xF873俊, 일지사, 1990)
「조선후기의 주자인쇄」(김원룡, 『향토서울』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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