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수

  • 예술·체육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광흥창봉사를 역임한 화가. 고동감식가.
이칭
  • 관헌(觀軒)
  • 기공(旂公), 여오(汝五)
  • 이칭백오(佰吾)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793년(정조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광흥창봉사
  • 출생 연도1735년(영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선표 (홍익대학교 박물관, 회화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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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광흥창봉사를 역임한 화가. 고동감식가.

내용

자는 여오(汝五)·백오(佰吾)·기공(旂公), 호는 관헌(觀軒). 생원시에 합격하고 종8품 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를 지냈다.

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이서구(李書九)·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 등과 1768년 무렵 원각사지(圓覺寺址) 부근에 살면서 백탑청연(白塔淸緣)을 맺고 술과 시문서화(詩文書畫) 등을 즐기며 교유하였다.

박지원은 그를 가리켜 “김광수(金光洙)가 감상지학(鑑賞之學)의 개창자라면 서상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묘경(妙境)을 깨달은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감식에도 능했지만 창작도 겸비한 인물이라고 격찬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음악과 고전 등의 교양도 깊었고, 또 소해(小楷)를 잘 썼으며 소미점(小米點)을 사용한 발묵법(發墨法)에도 능했다 하나 전하는 유작은 없다.

참고문헌

  • - 『연암집(燕巖集)』

  • - 「실학파(實學派)의 서화고동론(書畵古董論)」(이우성, 『서통』6,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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