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학회는 북풍회 계통의 학생이 주동이 되고 일부 중립파를 참가시켜 조직한 단체이나, 그 조직목적과 구성원들의 경향이 일제로부터 불온시되어 11월에 해산되었다.
그 뒤 공학회에 소속되었던 학생 가운데 일부분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와 경성학생연맹을 조직하였고, 그 주류는 공학회의 재조직공작을 전개하였으나 탄압으로 실패하자 북풍회의 후원으로 이 단체를 창립하였다.
주동인물은 강직구(姜稷求)·길윤기(吉允箕)·강도구(姜道求)·김구한(金龜漢)·최문화(崔文華)·박원효(朴元孝)·이중수(李重遂)·구연홍(具然弘) 등이었다. 이와 같이, 학생사회과학운동이 난립된 것은 당시 좌파활동의 양상을 반영한 것이고, 학생단체가 분열하였으므로 통일적인 활동이 불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