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총 ()

목차
불교
인물
남북국시대 태봉국에서 진표의 법맥을 계승한 법상종계 승려.
이칭
이칭
석충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911년
출생지
미상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태봉국에서 진표의 법맥을 계승한 법상종계 승려.
내용

석총(釋聰)은 태봉국을 세웠던 궁예의 측근 승려였으나 후에 고려를 건국한 왕건을 추종하였다. 8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진표(眞表)의 법맥을 계승한 인물 중 하나로 그 상징이 되는 진표의 가사와 간자(簡子)를 왕건에게 전해주었다는 석충(釋冲)과는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궁예가 스스로 미륵불을 자처하며 경전 20여 권을 지었는데, 그 말이 요망하고 모두 도리에 맞지 않았다. 이에 석총은 “모두 사악한 설과 괴상한 말로 교훈이 될 수 없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분노한 궁예는 석총을 철퇴로 내리쳐 죽게 하였다. 석총의 죽음과 관련된 정황 등을 통해 볼 때 진표계 법상종이 궁예와 대립하며 핍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궁예열전과 이를 인용한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에 실려있다.

참고문헌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가산)불교대사림: 13』(이지관,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12)
「고려 초기의 법상종과 그 사상」(김두진, 『균여화엄사상연구』, 1983)
「궁예의 정치적 성격」(신호철, 『한국학보』29,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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