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후반, 즉 경문왕 때 왕권강화를 위하여 관제개혁을 하면서 중국 당나라의 3성(省)을 본떠 중사성(中事省)과 함께 설치된 국왕 직속의 근시기구(近侍機構)이다.
중국 당나라의 문하성(門下省)에 대비되는 관부로 왕명의 선포 · 출납을 관장하였던 것 같다. 소속관원으로는 부사(副使)가 있었지만 다른 관직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860년(헌안왕 4) 보림사(寶林寺)의 비로자나불을 조성하기 위하여 김언경(金彦卿)은 사재를 털어 철 2,500근을 사들이고 왕이 망수택(望水宅) · 이남택(里南宅) 등의 금입택(金入宅)에 명하여 금 160푼(分)과 조(租) 2,000곡(斛)을 시주케하여 사찰의 장엄을 돕고 보림사를 선교성에 속하게 하였으며, 또 881년(헌강왕 7) 지증대사(智證大師) 도헌(道憲)을 선교성 부사 풍(馮)으로 하여금 수행시켜 경주에서 본래의 산사(山寺)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동일한 기능을 담당하였던 발해의 선조성(宣詔省)이 황제의 명령에 나타내는 ‘조(詔)’를 사용한데 비하여, 신라는 중국과 대외관계를 고려하여, 선교성이라 하면서 한 단계 아래인 왕(王)의 명령을 나타내는 ‘교(敎)’를 사용하여 외형상 격이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