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경(현재 평양)에 있었던 고려시대 태조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성용전은 장락궁 안에 있었다. 묘청의 난이 일어났을 때 서경성 안의 성용전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인종의 명을 받고 파견된 윤첨이 태조의 진영을 서경성 밖으로 가져나오다 죽음을 당하였다. 난을 진압한 김부식은 서경성 경창문으로 들어가 관풍전에서 축하를 받고, 인종에게 전승 보고를 올렸다. 이 글에서 김부식은, “이궁(離宮)의 먼지를 청소하고 원묘의 의관을 우러러보니, 보좌는 완연하고 잉궤(仍几)도 여전하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김부식이 말한 이궁은 곧 장락궁을, 원묘는 성용전을 의미한다. 즉 성용전은 장락궁 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조 진영은 정총의 시에서 보듯 곤룡포와 면류관의 복식을 한 모습으로 옥좌에 앉은 형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목은문고(牧隱文藁)』
- 『복재집(復齋集)』
- 「고려시대 서경의 성용전」(김철웅, 『문화사학』 31, 한국문화사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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