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정이란 용어는 일찍이 선유(先儒)의 경전(經典)에 나오지만 그것의 개념 규정과 상호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논설은 송대에 와서 활발했다.
성정에 관한 학설은 맹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맹자는 성선(性善)을 말했고, 정을 선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는 성과 정을 연속적으로 토론하지는 않았으나 두 가지가 서로 대립적인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비로소 성과 정은 합론(合論)되었고, 한유(漢儒)들이 인성 문제를 토론할 때 주요한 관념으로 나타났다. 한유들은 음양가(陰陽家)의 영향을 받아 성과 정을 이원화하였고 성선·정악의 학설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송유(宋儒)들이 성정을 아울러 일컬은 것은 한유들과 같았으나 송유들은 맹자를 종지로 삼았기 때문에 성정불상리(性情不相離)를 말했고, 장재(張載)같은 사람은 심통성정(心統性情)의 이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송대의 정호(程顥)는 성에서 형(形)이 있는 것은 심(心)이고, 성에서 동(動)하는 것은 정이라 파악하고 성이 있는 곳에는 바로 정이 있으니, 성이 없다면 어떻게 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장재는 심통성정을 말하면서 또 “성이 발(發)하면 정으로 나타나고, 정이 발하면 색(色)으로 나타나니 그것은 유(類)로써 응한 것이다”라 하였다.
주희는 “심은 성과 정을 통섭한 것으로 심은 신명(神明)의 집으로서 한 몸의 주재(主宰)이며, 성은 이것이 허다한 도리(道理)를 천(天)에서 얻어 심에 구재(具在)한 것으로 그것이 지식과 염려(念慮)에서 발하는 것은 모두 정이다”라 하였다.
그런데 정이(程頤)는 성과 정의 관계를 이(理)와 기(氣)의 관계에 대비, 인(仁)·의(義)·예(禮)·지(智)는 이로서 성의 덕(德)이요,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는 성의 동(動)으로서 정이며 기가 된다”고 하였다.
주희도 성·정을 이와 기의 관계로 보아 “무릇 사람이 능동적으로 말하고 움직이며 생각하고 영위함은 모두 기이나 이도 그것에 있다”라고 하였다. 주희는 ‘이체기용(理體氣用)’ 사상에다 성과 정의 관계를 대비, ‘성체정용(性體情用)’으로 말했고, 이것에 대한 논술은 그의 중화 사상(中和思想)에 잘 나타나 있다.
맹자에 의하면 성의 내용은 인·의·예·지의 네 가지 덕이고, 정의 덕목(德目)은 측은·수오·사양·시비의 사단(四端)이니, 사단은 그의 네 가지 덕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기≫ 예운편(禮運篇)에서는 인정(人情)을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으로 파악하고 이 일곱 가지 정은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문제는 다 같은 정인데 사단과 칠정이라는 두 가지 구분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을 변론한 것이 이른바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이다.
이 사단칠정논변은 주희가 “사단은 이(理)의 발(發)이고, 칠정은 기(氣)의 발이다”라고 한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것이 조선조에 들어와서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사단칠정논변을 거치면서 많은 쟁점을 불러일으켰다.
이이는 성은 이요, 심은 기요, 정은 이 마음[心]이 움직인 것이라고 하면서, “천리(天理)가 인간에게 부여된 것을 성이라 이르고, 성과 정이 합해 한 몸의 주재가 된 것을 심이라 이르고, 심이 사물에 응해 밖으로 발한 것을 정이라 이르나니, 성은 심의 체(體)이며, 정은 심의 용(用)이며, 심은 기의 미발이발(未發已發)의 총명(摠名)이므로 심이 성과 정을 통섭한다고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의 세목(細目)에는 인·의·예·지·신의 다섯이 있고, 정의 세목에는 희·노·애·구·애·오·욕의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이어 인간의 심체(心體)도 하나의 태극이니 성은 이의 체이고, 정은 기의 용이 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