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2년(세종 14)에 창제되었으나, 당시 사정거리가 겨우 200 여보(步)밖에 되지 않아서 존폐론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그 뒤 1437년 6월에 평안도에 많이 보내졌는데, 이는 휴대와 발사가 모두 간편하고 말 위에서 휴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부녀자도 능히 다룰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장려된 때문이다.
남아 있는 유물에 따르면, 세총통은 청동제로서 총길이는 13.8㎝에 지나지 않지만, 통신과 약실로 구성되었고, 통신 구연에는 대선(帶線) 1가닥, 약실 쪽에는 죽절(竹節) 2가닥이 있고, 약실은 통신보다 약간 큰 편으로, 약실 뒷면에서 중앙으로 2.4㎝ 사이를 두고 선혈(線穴)이 총열과 연결되어 뚫려 있다. 이 총통에는 차세전(次細箭)을 사용하여 총통을 철흠자(鐵欠子)에 집어 발사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