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총통은 조선 제4대 세종이 즉위하면서 국방시책의 일환으로 화약의 개량과 화기의 일발다전법(一發多箭法)을 연구한 성과로서 사전총통(四箭銃筒) · 팔전총통 · 삼총통과 더불어 1432년(세종 14)에 창제되었다.
이 총통은 소지(所持)와 발사에 편리할 뿐 아니라 유사시 대적하여 싸울 때는 말 위에서 많이 소지하여 연속 발사할 수 있어 편리하고, 또한 어린이와 부녀자도 능히 발사할 수 있어 장려하였던 총통이다.
한편 이 총통에 대해 《국조오례서례 國朝五禮序禮》의 군례 ‘세총통조’에서는 그 제원설명에서 약통장(藥筒長) · 격목통장(檄木筒長) · 취통장(觜筒長) 등으로 구분하고 총길이는 4치 4분 8리, 무게는 3량5전이라 하였고, 발사물로는 차세전(次細箭)을 사용하며 발사할 때는 총통을 철흠자(鐵欠子)에 집어 사용한다 하였다.
이 총통은 그 유전내력에 대하여 전해오는 바 없고, 다만 1965년 당시 서울 아현동에 거주하는 유기수집가 박호병에 의하여 군사박물관에 기증된 것이다. 청동으로 주조된 이 총통은 총길이 13.8㎝, 총신길이 8.7㎝, 구경 0.9㎝, 약실길이 5.1㎝로 구경에서 통신을 연하여 약실에 이르기까지의 외형이나 약실선혈(藥室線穴)을 연한 총구에 이르기까지의 내부가 아무런 상흔 없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한편 총구에는 구연대(口緣帶)를, 통신의 죽절(竹節)은 단조(單條)로, 약실 상하는 각각 단조로 두르고, 약실은 약간 도톰하게 처리하면서 그 정중에는 선혈을 뚫어 약실과 연결시킨 능숙한 공정기법으로 주조된, 우리 나라 유일의 최소형(最小形) 총통에 속하는 국방과학기술문화 유산으로 평가된다.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