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제16 왕비.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937년(태조 20) 중국의 후진(後晉)에 사신으로 가서 석경당(石敬瑭)의 등극을 축하하였고, 태조가 죽을 무렵 곁을 지키는 등 태조의 측근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승하하고 혜종이 즉위하자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소광주원부인 소생]을 왕위에 추대하기 위하여 혜종(惠宗)을 시해하고자 하였고, 혜종이 죽은 뒤에는 태조의 왕위계승 다툼에 휘말려 죽음을 당하였다.
그 와중에서 왕규의 일당 3백여 명이 같이 죽임을 당하였는데, 왕규의 딸인 소광주원부인이 무사하였을지는 의문이다. 생존하여 있었다 하더라도 반역자의 딸은 왕실에서 축출되는 예가 많아 왕비의 자리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갑동, 『고려전기 정치사』 (일지사, 2005)
- 김창현, 『광종의 제국』 (푸른역사, 2008)
- 이기백 외, 『고려광종연구』 (일조각, 1981)
- 정용숙, 『고려시대의 후비』 (민음사, 1992)
- 하현강, 『한국중세사연구』 (일조각, 1988)
논문
- 강희웅, 「고려혜종조 왕위계승란의 신해석」 (『한국학보』 7, 일지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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