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작(金永爵: 1802~186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덕수(德叟), 호는 소정(邵亭)이다. 충주목사 김사직(金思稙)의 아들이며, 영의정 김홍집(金弘集)의 아버지이다. 사헌부대사헌, 홍문관제학,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소정시고(卲亭詩稿)』 2권 1책, 『소정문고(卲亭文稿)』 4권 2책의 활자본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1891년(고종 28) 김영작의 아들 김홍집(金弘集)이 편집, 간행하였다.
『소정시고』는 편년순으로, 『소정문고』는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으며 책별(冊別)로 목록이 있다.
『소정시고』 권1은 1817~1847년에 지은 고금체시 111제가 수록되어 있다. 「다구시(茶甌詩)」는 역대의 다구로 시작하여 조선의 청화백자로 만든 다구까지 묘사하였다. 「송홍삼사부연(送洪三斯赴燕)」은 연행을 떠나는 홍양후(洪良厚)에게 지어 준 송시이다. 「차육일운주필증종인백륜……(次六一韻走筆贈宗人伯倫)」은 구양수의 시에 차운하여 김용화(金龍和)에게 지어 준 시로, 옹방강(翁方綱)의 「소석범정저록(小石帆亭著錄)」에 실린 ‘고시평측법(古詩平仄法)’에 따라 지은 작품이다.
권2는 18491868년에 지은 고금체시 98제가 수록되어 있다. 「헌종대왕만사(憲宗大王輓詞)」 오언절구 15수는 저자가 지우를 입었던 헌종을 애도하는 만시(輓詩)이다. 「복축(卜築)」은 저자가 1854년 용강(蓉江) 근처에 수목청화루(水木淸華樓)를 짓고 쓴 작품으로, 저자의 만년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도강(渡江)」부터 「심양귀로(瀋陽歸路)」까지는 18581859년 연행 왕복 도중에 지은 시이다.
『소정시고』 뒤에 1867년 장병염(張丙炎)이 쓴 서후(書後)가 있는데, 『소정시고』를 읽고 쓴 글이 아니라 저자가 연행을 떠나는 이풍익(李豐益) 편에 부친 「존춘헌시초(存春軒詩鈔)」를 읽고 쓴 글이다.
『소정문고』 권1은 소의(疏議) 7편, 서(書) 4편, 권2는 서(序) 6편, 기(記) 5편, 발(跋) 3편, 잡저 11편, 권3은 제문 8편, 묘지명 2편, 행록 1편, 권4는 경연 강의 ·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疏)의 「청청주대동임선소(請淸州大同賃船疏)」는 저자가 청주목사로 있을 때 올린 것으로, 청주의 대동미(大同米)를 아산 조운선(漕運船)으로 운송하는 데 따른 민폐를 덜기 위해 청주목의 대동미만은 독자적으로 납부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삼정의(三政議)」는 당시 문란해진 전제(田制) · 군적(軍籍) · 환모(還耗)의 삼정에 대한 폐단과 그 대책을 논한 것으로 당시의 경제사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서(書) 4편은 모두 중국 문사(文士)와 주고받은 것이다. 「여성경재서(與成絅齋書)」는 주로 정주(程朱)의 도학을 이어받은 육가서(陸稼書)에 대해 문의한 내용이고, 「답송옥호정옥서(答宋玉壺鼎玉書)」는 송정옥(宋鼎玉)과 경(敬)에 대해 논한 것이며, 「여이우범백형서(與李雨帆伯衡書)」는 이백형(李伯衡)과 심성학(心性學) 및 자신의 시에 대해 논한 것이다.
잡저 가운데 「화유(貨喩)」 · 「논교(論交)」 · 「논문(論文)」이 특히 돋보인다. 이 가운데 「화유」는 저자의 문재(文才)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백형은 저자를 일컬어 ‘걸사(傑士)’라 칭송하고 「화유」를 ‘보화(寶貨)’라 극찬하였다. 「논교」는 저자가 26세 때 이백형에게 보낸 글로, 사귐[交]에는 신교(信交) · 소교(素交) · 막역지교(莫逆之交) · 내구지교(耐久之交) · 망년지교(忘年之交) · 동지지교(同志之交) 등이 있다고 하면서 신교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글이다.
「경연 강의」는 저자가 1864년(고종 1)부터 1868년까지 4년간 경연에서 강의한 내용을 간추린 것으로 학과명, 진도, 문답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소정문고』 말미에는 아들 김홍집이 지은 묘표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