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74년(고종 11)에 제조된 청동제 유통식 화포(火砲).
내용
포이(砲耳)는 포구에서 약실 쪽으로 52.3㎝ 지점에 좌우로 지름 6㎝로 하여 동시 주조하였으며 선혈(線穴)은 약실 정중앙 후면에 사선꼴로 뚫었다. 병부(柄部)는 포미에 길이 13.3㎝로 허리를 죽여 원형으로 돌출시켜 포신의 고하 조정과 포운영에 편리하도록 고안되었다.
약실 표면에는 ‘小砲二百八十五斤火藥一斤同治十三年五月日雲峴宮別鑄(소포285근화약1근동치13년5월일운현궁별주)’라는 음각명문이 있는데, 이는 1874년 5월에 운현궁에서 따로 주조된 소포로서 무게는 285근이고 화약은 1근이 소용된다는 내용이다.
1980년 김포 덕포진 포대에서 같은 규모와 같은 명문의 소포 2문이 발굴된 바 있었다. 특히 이 포는 포가(砲架), 즉 통나무를 다듬어 받침대를 만들고 좌우에는 포이받침, 그리고 약실 밑으로는 포신을 고하로 조정하는 나사장치, 이동에 용이한 좌우의 차륜(車輪) 등을 고루 갖추고 있어 국방과학기술 유산으로 평가된다. 육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 『덕포진포대발굴조사보고서(德浦鎭砲臺發掘調査報告書)』(김포군, 1980)
- 『한국(韓國)의 화포(火砲)』(이강칠, 군사박물관,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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