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에서 화약과 실탄을 장전하고 손으로 약선에 불씨를 점화, 발사하는 유통식 화기(有筒式火器)이다.
이 승자총통은 1575년(선조 8)부터 1578년(선조 11)까지 전라좌수사와 경상병사를 지낸 김지(金墀)가 만든 화기로서 1583년 이탕개(尼湯介)의 난 때 큰 몫을 하였다. 그러나 그 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조총 때문에 그 위력을 잃었다.
형태는 통신(筒身) · 약실(藥室) · 손잡이의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통신은 화살이나 탄환을 장전하게 하는 부분으로, 내부는 원통이며 외형은 대[竹]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마디는 8∼9㎝ 간격으로 6∼7개가 약실과 연결되어 있다.
약실은 그 깊이가 약 12㎝ 정도로 후부의 중앙에는 선혈(線穴)이 약실을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약실 뒤로는 자루가 달리는데 여기에는 역시 나무로 된 손잡이가 끼워지기 때문에 멈치못 구멍이 뚫려 있고, 대개의 경우 이 손잡이에 그 총통의 명문이 새겨지는 것이 통례이다.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 ‘승자총통조’에 따르면 발사법은 중약선(中藥線) 3치, 화약 1냥, 토격(土隔: 화약을 압축시키는 흙) 6푼으로 하여 철환 15개 또는 피령목전(皮翎木箭)을 발사하면 600보에 이른다고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