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기 ()

근대사
문헌
유생 이단석이 1862년부터 1895년 12월까지 자신이 견문한 내용을 서술한 야사집. 잡록집 · 체험기.
정의
유생 이단석이 1862년부터 1895년 12월까지 자신이 견문한 내용을 서술한 야사집. 잡록집 · 체험기.
편찬/발간 경위

1책(37장). 필사본.

필자는 공주 근방에 거주하던 유생이며, 이 글을 집필한 시기는 1895년 12월 말로 기사가 여기에서 끝을 맺었다. 그는 문명교화(文明敎化)가 점차 쇠퇴해져서 마침내 내란이 일어나고 외국이 침략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경과를 통곡하는 심정으로 쓴다고 서문에 밝혔다.

또한 시문기란 제목을 붙인 까닭은 기사가 모두 항간에서 돌아다니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이거나 공주 인근의 일이 많으므로 정확도가 높은 편이다.

내용

필자는 1862년 임술민란부터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사건을 기억이나 조보 등과 같은 관청 문서에 의거해서 기술하였다. 임오군란까지는 한 해의 중요 사건을 간략히 썼으나, 이후는 월별로 자세히 기록했으며, 1894, 5년은 상세하게 적었다.

그는 양반유생답게 임술민란이 이후 사태의 시초라고 보고 있다. 그 뒤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도 보수적인 시각에 입각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된 인물을 극히 부정적으로 파악한다.

1892년 동학교도의 공주 취회(聚會)가 열렸고, 1894년 5월에 이미 이 지역에서도 동학교도가 대규모로 집결한 곳이 수십 군데가 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또한 7월에도 동학교도가 지역을 장악하고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서 군량과 무기 등을 수집하던 활동, 그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 등을 자세히 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식량을 징발당하게 된 자신이 반송접에 가서 대장과 담판을 했고, 아들이 이인대접주 임기준을 만나 보호를 청해서 도움을 받은 경험도 실었다. 이 뒤에는 우금치 전투를 전후한 상황, 동학농민군의 패퇴, 관군의 진압을 기술하였다.

1895년의 기록으로는 박영효의 민비암살 기도 사건, 혼란 중에 일어나는 범죄상, 민비시해, 단발령, 의병항쟁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10월 28일 최초의 유생의병이라고 할 수 있는 문석봉이 공주부를 습격한 사실을 적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집필자
장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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