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1628년(인조 6) 1월 김진성(金振聲) 등과 함께 전세마(前洗馬) 허유(許逌), 유학 허정(許珽)·이우명(李友明) 등이 모반을 꾀하였다는 것을 고변하였다.
다음달에 모반 고변자들에 대한 논공행상이 있었는데, 서얼 출신으로서 관직을 줄 수 없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고변사건에서 역할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결국 6품 실직(實職)을 제수받았다. 다시 그 해 3월에는 영사공신(寧社功臣)의 훈적(勳籍: 공훈을 기록한 문서)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갈충효성병기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炳幾翊命寧社功臣) 3등에 봉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