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나마(奈麻)였다. 왜의 긴메이왕[欽明王]이 죽자, 571년(진흥왕 32) 8월 이후에 조사(弔使)로서 미질자(味叱子)와 함께 왜로 건너가 빈소에 애도한 뒤 귀국하였다.
580년(진평왕 2) 6월에는 나마 안도(安刀)와 함께 왜에 파견되었으나 통교하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2년 후에도 안도와 함께 왜에 파견되었으나 역시 통교하지 못하고 귀국한 것으로 『일본서기』에 적혀 있다. 그런데 후자의 이 기사는 비다쓰왕[敏達王] 9년 6월초 기사의 중출(重出)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