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강원도사, 충청감사, 전라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수차례에 걸쳐 정언(正言)과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강원도사와 장령(掌令)을 지냈고, 1765년 이이(李珥)의 양병십만론(養兵十萬論)과 송나라 진덕수(眞德秀)의 주변팔책(籌邊八策)과 같은 국방강화의 방책을 세울 것을 역설하여 영조의 동감을 얻은 바도 있다. 그 뒤 1772년 승지가 되었고, 문재(文才)가 있어 1773년의 응제(應製)에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해 충청감사가 되었고, 1775년 대사헌을 거쳐 전라감사를 지냈다. 1776년(정조 즉위)에 정후겸(鄭厚謙)의 옥사에 연루되어 변방에 유배되었다.
『영조실록』권125, 8월조에는 안겸제의 타고난 성품이 간사하고 잘 속이며, 행동이 촌스럽고 천박하였다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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