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태안 안흥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진성(鎭城)이다. 바다와 강도(江都)를 함께 방어하고, 조운선을 호송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1,714m이며, 성벽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남문지 주변에는 여장까지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성곽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동지지』에는 안흥진성이 1655년에 축조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성내에서 발견된 각자성석(刻字城石)에 의해 1583년에 초축된 것을 확인하였다. 1655년은 수축(修築)한 해로 보여진다.
정의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 시대 진성(鎭城).
발굴 경위 및 결과
건립 경위
변천
1675년(숙종 1)에는 태안 안흥진성에 방어영을 설치하고 태안 군수를 무관(武官) 가운데 선택하여 안흥 방어사를 겸임시킴으로써 안흥성 방어를 전담시키기도 하였다. 이 조치는 1680년(숙종 6)에 폐지되었다.
1706년(숙종 32)에는 태안 방어영이 설치되고, 태안 안흥진성이 속영(屬營)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치에도 안흥 방어가 소홀해지게 되어, 1711년(숙종 37)에는 다시 안흥 방어영을 재설치하였다. 이때에는 안흥 첨사가 수군 방어사를 겸임하여 태안 군수가 방어사가 되었을 때의 폐단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충청 수영(水營)의 전선(戰船)을 안흥 방어영에 분급하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1712년 5월에 폐지되고 말았다.
1779년(정조 3)에는 태안 안흥진성을 폐지하고 대신 홍충도 수영의 행영(行營)을 설치하는 조치가 결정되었다. 강도(江都)의 방어를 강화하면서 충청 수영에 대한 통어를 향상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그렇지만 행영에 본영의 전선(戰船)을 옮길 수 없게 됨에 따라 1790년(정조 14)에는 행영이 폐지되고, 태안 안흥진성에 첨사를 다시 설치하였다.
1866년(고종 3)에는 외부의 침략을 막고, 변란을 제압하자는 취지로 태안 방어영이 다시 설치되었지만,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 1885년(고종 22)에 태안 안흥진성이 다시 설치되었다. 이후 안흥진성은 1895년 을미개혁 때 다시 폐지되었다.
형태와 특징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효종실록』
- 『대동지지』
- 『비변사등록』
단행본
- 『안흥진성』(이남석·서정석, 1995)
- 『안흥진성 -성벽 절개조사 보고서-』(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08)
- 『태안 안흥진성 -2차 발굴조사 보고서-』(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14)
-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0)
- 『태안 안흥진성의 문화재적 가치와 활용 방안』(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0)
논문
- 서정석, 「태안 안흥진성에 대한 일고찰」(『역사와 역사교육성』 3·4합진, 웅진사학회, 1999)
- 서태원, 「조선 후기 충청도 안흥진의 설치와 변천」(『역사와 실학』 50, 역사실학회, 2013)
- 서태원, 「조선 후기 충청도 안흥진의 구조와 기능」(『역사와 실학』 51, 역사실학회, 201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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