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안흥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진성(鎭城)이다. 바다와 강도(江都)를 함께 방어하고, 조운선을 호송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1,714m이며, 성벽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남문지 주변에는 여장까지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성곽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동지지』에는 안흥진성이 1655년에 축조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성내에서 발견된 각자성석(刻字城石)에 의해 1583년에 초축된 것을 확인하였다. 1655년은 수축(修築)한 해로 보여진다.
태안 안흥진성이 자리한 안흥 지역은 삼남 지역의 조운선이 통과하는 지역이고, 지리적으로 강도(江都)와 가까운 곳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난행량(難行梁) 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운선의 안전한 호송, 그리고 강도 지역의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안흥 지역에 성곽이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태안 안흥진성의 축성 시기에 대해서 『대동지지』에는 1655년(효종 6)에 사인(士人) 김석견(金石堅)의 건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1653년에 안흥에 신진(新鎭)을 설치하고 그 신진에 성을 쌓는 것을 의논하는 것으로 보아, 구진(舊鎭)은 그 이전에 설치되어 있었고 이미 성곽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태안 안흥진성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 결과, 만력(萬曆) 11년(1583)이라 새긴 각자성석(刻字城石)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태안 안흥진성이 만들어진 시기는 1583년이고, 그때 안흥성이 제진(諸鎭) 된 것으로 보인다.
태안 안흥진성은 조선 전기만 해도 안흥량수에 불과하였지만, 1609년(광해군 1)에는 거진(巨鎭)이 되었다.
1675년(숙종 1)에는 태안 안흥진성에 방어영을 설치하고 태안 군수를 무관(武官) 가운데 선택하여 안흥 방어사를 겸임시킴으로써 안흥성 방어를 전담시키기도 하였다. 이 조치는 1680년(숙종 6)에 폐지되었다.
1706년(숙종 32)에는 태안 방어영이 설치되고, 태안 안흥진성이 속영(屬營)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치에도 안흥 방어가 소홀해지게 되어, 1711년(숙종 37)에는 다시 안흥 방어영을 재설치하였다. 이때에는 안흥 첨사가 수군 방어사를 겸임하여 태안 군수가 방어사가 되었을 때의 폐단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충청 수영(水營)의 전선(戰船)을 안흥 방어영에 분급하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1712년 5월에 폐지되고 말았다.
1779년(정조 3)에는 태안 안흥진성을 폐지하고 대신 홍충도 수영의 행영(行營)을 설치하는 조치가 결정되었다. 강도(江都)의 방어를 강화하면서 충청 수영에 대한 통어를 향상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그렇지만 행영에 본영의 전선(戰船)을 옮길 수 없게 됨에 따라 1790년(정조 14)에는 행영이 폐지되고, 태안 안흥진성에 첨사를 다시 설치하였다.
1866년(고종 3)에는 외부의 침략을 막고, 변란을 제압하자는 취지로 태안 방어영이 다시 설치되었지만,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 1885년(고종 22)에 태안 안흥진성이 다시 설치되었다. 이후 안흥진성은 1895년 을미개혁 때 다시 폐지되었다.
태안 안흥진성은 바다를 향해 돌출된 구릉의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80m 정도 되는 나지막한 구릉 4개를 에워싸면서 만들어졌는데,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의 마안부(馬鞍部)에 성문이 자리하고 있다. 동문은 수성루(壽城樓), 서문은 수홍루(垂虹樓), 남문은 복파루(伏波樓), 북문은 감성루(坎城樓)라 부른다. 성벽은 다른 일반적인 조선 시대 성곽과 마찬가지로 하단부의 성돌이 크고, 위로 올라가면서 성돌이 점점 작아진다. 다만 동벽의 경우 다른 구간과 달리 조잡한데, 『비변사등록』에 보면 1750년(영조 26)에 큰 비가 내려 동벽이 붕괴된 일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붕괴된 부분을 다시 쌓아 현재와 같이 조잡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안 안흥진성은 축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성곽이다. 각자성석(刻字城石)을 통해 문헌 기록과 달리 1583년에 초축한 사실을 알 수 있고, 또 『대동지지』의 기록을 통해 1655년에 쌓기 시작해 1656년에 증축한 것을 알 수 있다. 1750년(영조 26)에 큰 비로 성벽이 붕괴되어 수축(修築)했다는 문헌 기록이 있는데, 이런 영향 때문인지 현재도 동벽만은 조잡하게 남아 있다. 태안 안흥진성은 성벽의 전존 상태가 양호하고, 특히 여장까지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성곽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