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도량(藥師道場)은 약사불을 모시거나 『약사경』을 독경하며 재액을 소멸하고 소원 성취를 기도하는 법회의식이다. 약사여래가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고자 12가지 대원력(大願力)을 세운 것을 근원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의 약사 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내세 신앙인 미타 신앙·현세기복적인 관음 신앙과 더불어 가장 널리 수용되었다. 특히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는 현세적 성격을 지니면서 밀교와 함께 신앙이 되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승려 밀본(密本)은 『약사경』을 독경해 왕의 병을 낳게 하였고 신문왕 때 승려 혜통(惠通)은 밀교적 주술로 왕의 병을 치료하였다. 이처럼 기복적이며 정토왕생적 성격을 지닌 약사 신앙은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약사 신앙의 전형을 이루었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109년(예종 4) 5월 12일 여진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문덕전에서 약사도량을 개설하였고, 1254년(고종 41) 6월 17일에는 몽골병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공덕천(功德天)도량과 함께 약사도량을 베풀었다. 고려 말인 1390년(공양왕 2) 10월 27일에도 왕이 왕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사법석(藥師法席)을 베풀었다고 한다. 무신집권기의 문인 이규보는 약사도량과 관련된 기문을 여러 편 지은 바 있다. 조선시대에도 약사 신앙은 존속하였다. 태종은 태상왕 이성계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해 덕수궁 옆에서 승도 1백 명을 모아 약사정근(藥師精勤)을 설하였으며, 1402년(태종 2)에는 개경사에서 약사도량이 개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