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

  •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백제의 행건위장군조선태수, 건위장군광릉태수 등을 역임한 관리.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행건위장군조선태수(行建威將軍朝鮮太守)|건위장군광릉태수(建威將軍廣陵太守)|사마(司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도학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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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백제의 행건위장군조선태수, 건위장군광릉태수 등을 역임한 관리.

내용

북중국출신의 한인계(漢人系) 백제인으로 추정된다. 467년(개로왕 13)과 471년에 각각 유송(劉宋)에 사신으로 파견된 바 있으며, 동성왕대에도 대중국외교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그 공으로 행건위장군조선태수(行建威將軍朝鮮太守)로서 사마(司馬)를 겸하였던 그는 490년(동성왕 12) 동성왕의 요청에 따라 남제(南齊)에 파견되었는데, 무제(武帝)로부터 건위장군 광릉태수(建威將軍廣陵太守)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관직이 조선태수 및 광릉태수였던 사실을 주목하여 백제의 화북(華北) 진출과 관련짓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계 관직은 중국에 입조했을 때 백제사신이 받을 수 있는 대우의 확보를 위한 것으로서 하등의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 다만, 백제가 대중국외교에 한인계 백제인들을 줄곧 이용한 점을 생각할 때 ‘조선’·‘광릉’은 그의 출신지가 북중국인 것과 관련있지 않을까 한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위서(魏書)』

  • - 『남제서(南齊書)』

  • - 「한성말웅진시대(漢城末熊津時代)의 백제왕위계승(百濟王位繼承)과 왕권(王權)의 성격(性格)」(이도학,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50·51,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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