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국출신의 한인계(漢人系) 백제인으로 추정된다. 467년(개로왕 13)과 471년에 각각 유송(劉宋)에 사신으로 파견된 바 있으며, 동성왕대에도 대중국외교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그 공으로 행건위장군조선태수(行建威將軍朝鮮太守)로서 사마(司馬)를 겸하였던 그는 490년(동성왕 12) 동성왕의 요청에 따라 남제(南齊)에 파견되었는데, 무제(武帝)로부터 건위장군 광릉태수(建威將軍廣陵太守)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관직이 조선태수 및 광릉태수였던 사실을 주목하여 백제의 화북(華北) 진출과 관련짓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계 관직은 중국에 입조했을 때 백제사신이 받을 수 있는 대우의 확보를 위한 것으로서 하등의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 다만, 백제가 대중국외교에 한인계 백제인들을 줄곧 이용한 점을 생각할 때 ‘조선’·‘광릉’은 그의 출신지가 북중국인 것과 관련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