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사되어 양산패총(梁山貝塚)으로 알려진 유적이다. 1964년 서울대학교, 196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소규모 발굴 조사가 실시된 바 있으나 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 파악은 어려운 실정이었다. 1993년에야 비로소 정식 보고서가 간행되었는데, 그 내용이 천안청당동유적 보고서의 후반부에 끼어 들어가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의 패총 전경과 조사 모습이 유리 건판으로 남아 있다. 남부동패총으로 메모되어 있어 남부동패총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양산다방동패총(梁山多芳洞貝塚)과 같은 언덕땅에 있는 동일한 유적이다. 유적은 양산읍 남동쪽에 반도처럼 돌출한 표고 150m 내외의 언덕땅에 형성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조사 성과는 환호(環濠)의 발견인데, 고지성 취락의 존재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보고서가 제때 간행되지 못하면서 그 성과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었다. 보고된 내용이 빈약하여 유적의 전모를 알기 어렵지만, 최근 '가야유적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지원사업'의 대상 유적으로 선정되면서 경상남도와 양산시가 시 ·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추가로 환호가 확인되었으며, 환호 내부에서도 원형 주거지와 고상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언덕의 비탈면에서는 참굴과 백합 등의 조개껍데기가 두껍게 퇴적된 조개더미가 확인되었다.
환호의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기둥구멍이 열을 띠면서 다수 확인되어 목책(木柵)이나 망루(望樓) 등의 방어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주로 토기류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적색연질토기(赤色軟質土器)를 비롯하여, 와질토기(瓦質土器) · 도질토기(陶質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화살촉 · 바늘 · 칼손잡이 등 소량의 철기와 골각기(骨角器), 석기 및 자연 유물 등이 있다.
2020~2021년에 실시한 시 · 발굴 조사를 통해 언덕 전체에 유적이 형성되어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환호를 비롯한 주거지, 고상 건물지 등 다수의 유구, 조개더미가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종합적인 생활유적으로 볼 수 있다. 향후 양산다방동패총보다는 양산다방동유적, 혹은 양산다방동취락유적으로 명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