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우선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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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황이 1894년 9월부터 1895년 2월까지 제2차 동학농민전쟁에 관해 기록한 일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영민 (상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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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이두황이 1894년 9월부터 1895년 2월까지 제2차 동학농민전쟁에 관해 기록한 일기.

개설

4책. 1894년 9월 동학농민군이 삼남지방은 물론이며 경기도 안성과 죽산에서까지 기포하였다. 그러자 9월 10일 정부는 이두황을 죽산부사 겸 장위영(壯衛營) 영관으로 임명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양호우선봉일기는 이 날부터 시작해 이두황이 서울로 귀환해서 인신(印信)을 반납한 이듬해 2월 18일까지를 대상으로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우선봉진의 이동, 효유, 진압, 처벌, 전투, 다른 관군 및 일본군과의 합동 작전, 중앙 정부 및 지방관과의 연락, 군수품 조달, 휘하 병정의 명단 등 제2차 동학농민전쟁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

이두황의 부대는 목천 세성산 전투에서 대승리한 것을 비롯해서 해미 전투, 서산 전투, 논산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우금치 전투에서 패퇴한 동학농민군을 추격해서 전라도로 넘어가 남원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 곡성, 구례, 광양, 순천, 보성, 장흥 등 전라남도 각 군현을 순행하였다.

제1책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충주와 진천 일대에서 활동하던 동학의 남접과 북접의 관계, 북접의 기포 경과, 맹영재 등 민보군과 동학농민군의 충돌에 관한 것으로 다른 자료에서 볼 수 없는 중요한 기술이다.

그렇지만 9월 24일조에 실린 탐문 보고서에 남접의 지도자로 이름 높은 서장옥(徐璋玉)이 허문숙과 함께 유학당(幼學黨)이 되어 동학당 신재련과 대치하고 있다고 서술된 부분은 잘못 기록된 것이다.

제2책은 우금치 전투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전투 상황을, 제3책과 제4책은 전라도로 퇴각해서 분산되어 버린 동학농민군의 진압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유학자로 이름 높은 이기(李沂)가 토벌군을 조직해서 구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실이 특이하다.

고려대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1894년 12월 30일까지의 기사만 있고, 그 이후 것은 윤사순(尹絲淳) 소장본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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