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홍계훈(洪啓薰)이 양호초토사에 임명되어 장위영과 강화영 병력을 이끌고 전주로 출동하였다.
이 책은 홍계훈이 부대를 이끌고 인천에 도착한 4월 3일부터 전주성을 수복한 뒤 귀경한 5월 23일까지의 기록이다. 그 내용은 초토영이 의정부로 발송한 장계(狀啓), 전라도 각 군현에 내려보낸 감결(甘結), 전령(傳令), 방문(榜文), 전라감영과 충청감영에 보낸 이문(移文), 효유문(曉諭文)을 날마다 기록한 것으로 일종의 문서집이다.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로서, 주요 내용은 초토영 부대의 활동, 동학농민군의 동향, 전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의 정황, 관군과 동학농민군의 전투, 초토영이 각 군현에 내린 병력과 식량 동원 지시 등이다.
초토영은 사실 충청도와 전라도 두 곳의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서 동원되었으나, 실제로는 전라도에서만 작전을 하였다.
경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접한 동학농민군이 영광 등 전주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홍계훈이 갈피를 잡지 못하며 효유문만 발하고 정찰대만 보내다가 신속한 진압을 독려하는 정부의 지시에 당황하는 모습도 보인다.
또한 장흥 전투의 패전상을 축소해서 동학농민군을 수백 명 사살했지만, 경군은 6명밖에 전사하지 않았다는 패잔병의 보고를 그대로 적고 있다. 또한 4월 27일 동학농민군의 전주 입성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전주성 전투의 전황과 전과에 대해서 홍계훈이 과장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전공을 탐했다는 혐의를 면할 수 없을지라도, 이 책의 관련 기록은 대체로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주성 전투 상황 및 동학농민군의 해산 과정이 상세히 다루어져 있으며, 양호순변사 이원회(李元會)와 갈등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전주성 수복 직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조처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1959년에 발간한 『동학란기록(東學亂記錄)』 상권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