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 ()

사회구조
제도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무를 수 있도록 공간 및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숙박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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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여관은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무를 수 있도록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박 시설이다. 근대적 형태의 여관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개항과 더불어 국내외를 오가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이다. 초기 여관은 숙식을 모두 제공하는 형태였으나, 1950년대 후반부터는 주로 숙박만 제공하였다. 1980년대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모텔이라는 이름으로 양적 확장을 이뤘으며, 2000년대에는 시설과 서비스를 고급화하여 질적 변화도 꾀하였다. 최근 온오프라인 연계 숙박 서비스의 등장으로 여관은 숙박 시설 이상의 일상적 여가 문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키워드
정의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무를 수 있도록 공간 및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숙박 시설.
변천

여관은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무를 수 있도록 공간 및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숙박 시설 중 하나로, 근대 이후 출현하였다. 교통수단이 제한적이었던 과거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이동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관과 같은 근대적 의미의 사설 숙박 시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숙박 시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공무를 위한 공설(公設)이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공설 숙박 시설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삼국시대 487년(신라 소지왕 9)이다. 역(驛)이라고 불리던 이 시설은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 잠시 머무르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후 각 주현의 관(館)에 설치된 객사(客舍)와 교통 요지에 위치한 원(院) 등과 같은 공설 숙박 시설이 출현하였다. 객사는 공무로 방문한 손님을 접대하였고, 원은 공적 목적과 사적 목적이 혼재된 형태인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현재의 여관과 유사한 형태의 숙박 시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객주(客主)여각(旅閣)을 들 수 있다. 이는 17세기 후반부터 중국과의 무역과 시장의 발달에 따라 보부상을 비롯한 상인 집단이 형성된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상인들은 지역을 오가며 숙박 시설을 이용해야 했고, 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객주와 여각이 만들어졌다. 주막(酒幕)도 이 시기에 등장했는데, 주막은 상인보다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객주나 여각과 다르다.

내용

여관이 공식적 명칭으로 사용되고 독립적인 업종으로 인정받은 것은 고종 때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1880년경부터 서구 열강들이 개항과 더불어 조선에 진출하면서 외국인과 다른 지역을 오가는 내국인이 자연스럽게 증가하였다. 이들이 이용하는 근대적 형태의 숙박업소를 여관이라 불렀고, 이를 기점으로 여관업이 공인되었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화한 이후 여관업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 시기에 여관이 특히 번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제가 조선을 대륙으로 진출하는 통로로 삼고 병참기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근대화도시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철도, 도로 등 도시를 위한 교통 기반시설이 만들어지고 상공업이 함께 발전하면서 인구의 이동도 대폭 증가했다. 근대화와 도시화는 자본과 인구의 이동과 집중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숙박 시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다. 본격적으로 여관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여관의 규모나 시설도 변화했다. 일제강점기 초반의 여관은 대부분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지어져 소규모였으나, 서구 문물의 범람 속에서 기업화하였고 그 모습도 서양식을 닮게 되었다. 아울러 일본식과 서양식의 여관과 한국인의 생활 방식이 상호작용하여 한국식 여관도 출현하였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여관의 용도와 형태에 있어서 변곡점이 되었다. 해방 전 여관은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채워져 있었으나, 한국 전쟁을 겪은 후 1950년대부터는 일본식 가옥이 점차 사라져 갔고 다다미방은 온돌방으로 개량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용도에 있어서도 숙식을 동시에 제공하는 사례가 많아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여관은 숙식을 함께 해결하는 곳이 아닌 숙박만을 위한 시설로 변모했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자 추진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촌 인구가 대거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게 하였고, 이들이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해졌다. 그 결과 인구 밀집 지역인 도심과 기차역 주변에 여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경제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여관의 수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숙박 위주의 여관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으며, 주로 도시와 공단 등 인구가 많은 지역과 관광지에 집중해 있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도심의 여관은 여인숙이나 여관 같은 서민들의 숙박 시설과 유흥가의 모텔로 양분되었다. ‘∼장’이란 이름의 여관이 모텔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88올림픽 전후이다. 그리고 여관은 근교 전원 지역으로 확산해 난개발 등의 문제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1999년 「공중위생법」이 개정되어 여인숙, 여관, 모텔 등 모든 숙박업소가 호텔이란 명칭을 제한 없이 쓸 수 있게 되면서 여관업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특히, 장급 여관에서 모텔로 변모한 경우, 호텔급의 시설을 갖추고 고급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급화된 여관은 이용 형태의 변화도 가져왔다. 여관은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닌 파티, 회식, 모임 등이 열리는 다기능 여가 문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계 숙박 서비스의 등장은 편리한 검색과 예약을 가능하게 해 여관의 양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현황

여관업은 1962년 제정된 「숙박업법」에 의해 법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1986년 「공중위생법」이 제정되면서 숙박업은 목욕장업, 수영장업, 이용업, 미용업, 유기장업 등과 함께 ‘위생접객업’으로 통합되어 관리되었으며, 이때 숙박업은 호텔업, 콘도미니엄, 여관업, 여인숙업을 포함하였다. 한편, 「공중위생법」은 「공중위생관리법」(2019년)으로 개정되었는데, 이때부터 여관은 호텔, 모텔을 포괄한 ‘일반 숙박업’으로 분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여관업이 포함된 일반 숙박업소는 전국에 총 2만 5449개소이다.

의의와 평가

1980∼90년대에 주요 숙박 시설 중 하나였던 여관은 점차 형태나 기능이 다양화되면서 일상적 여가 문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朝鮮人の商業』(조선총독부, 1925)
『韓國旅行報告書』(神戶高等商業學校, 1906)

논문

나종우, 「전통숙박시설 변천」(『향토서울』 37, 서울역사편찬원, 1979)

인터넷 자료

통계청 : 시도별공중위생영업소현황, 2021(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17&tblId=TX_117430022)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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