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金楷: 1633~1716)는 조선 후기 영남의 유학자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정칙(正則), 호는 부훤당(負暄堂)이다. 저서로는 『역학계몽복역(易學啓蒙覆繹)』 외에 『부훤당문집(負暄堂文集)』이 있다.
1899년에 후손 김찬규(金瓚圭)가 간행하였다.
『역학계몽복역』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주희의 『역학계몽』을 따르고 있다. 권1은 『역학계몽』의 ‘본도서제일(本圖書第一)’에 해당하고, 권2~4는 ‘원괘획제이(原卦畫第二)’를 상 · 중 · 하로 나눈 것이다. 권5·6은 ‘명시책제삼(明蓍策第三)’을 상 · 하로 나눈 것이다. 『역학계몽』의 ‘고변점제사(考變占第四)’ 내용이 없는데, 김홍규의 지문에 따르면 이 부분은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록된 『역학계몽』은 원(元)대 학자들의 학설을 집성한 성리대전본이다.
『역학계몽복역』은 크게 성리대전본 『역학계몽』 원문과 김해의 해설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성리대전본 원문 부분에서는 세조의 명에 의해 간행된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 · 보해(補解)』를 조목별로 인용하고 있다. ‘해안(楷按)’, ‘안(按)’, ‘중안(重按)’ 등으로 시작되는 저자의 해설 부분에서는 해당 조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고, 이황의 『계몽전의(啓蒙傳疑)』의 제설들을 수록해 검토하며 간간이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 등 조선 학자들의 견해도 인용하고 있다.
『역학계몽복역』은 중국 학자들뿐만 아니라 조선 학자들의 학설까지 모아 정리하고, 이황의 『계몽전의』로 대표되는 당시 조선의 『역학계몽』 관련 논의들을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검토해 종합하였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중국 학자들의 학설들만 모아 정리한 일반적인 『역학계몽』 주석서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역학계몽복역』은 성리대전본 『역학계몽』에는 없는 수많은 '도설(圖說)'들을 수록해 『역학계몽』을 해설하고 있는데, 일부의 출처가 이황의 『계몽전의』라는 점만 확인될 뿐 대다수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
이창일의 연구에 따르면, 책 제목인 ‘복역(覆繹)’은 ‘역의 심오한 뜻을 가만히 뒤지고 들추어서 단서를 찾아본다’는 ‘주석’의 의미로, 이 책의 기본적인 의도는 주자의 논리를 부연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선경은 『역학계몽복역』을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반에 퇴계학파에서 나온 『역학계몽』 관련 연구 중 가장 방대하고 종합적인 저술로, 학계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저작”이라 평가하며, 그 의의를 높이 산다. 그의 평가처럼, 향후 이 책에 대한 심화된 연구와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