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당곡리 십이장 신당

  • 종교·철학
  • 유적
  • 삼국
  • 시도문화유산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에 있는 중국 삼국시대의 12장군을 신으로 모신 신당. 무속신당.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영진
  • 최종수정 2024년 06월 03일
영동 당곡리 십이장신당 미디어 정보

영동 당곡리 십이장신당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에 있는 중국 삼국시대의 12장군을 신으로 모신 신당. 무속신당.

내용

1976년 충청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동제당(洞祭堂)의 일종으로 중국 삼국시대의 12장군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장군신은 관우(關羽) · 장비(張飛) · 제갈공명(諸葛孔明) · 조자룡(趙子龍) · 황충(黃忠) · 강유(姜維) · 마초(馬超) · 마속(馬謖) · 요화(寥化) · 비위(費褘) · 마축(麻竺) · 위연(魏延) 등이지만, 그 가운데 주신은 관우이므로 관우신당(關羽神堂) 또는 관왕묘(關王廟)라고도 한다.

이들 12장신의 영정을 모신 기와집 옆에는 관우의 말인 적토마(赤兎馬)의 그림을 걸어놓은 조그마한 별각(別閣)이 있다. 관왕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군대가 왜군을 물리친 것이 관우의 음조(陰助)라 하여, 서울에 1599년(선조 32)에 남묘(南廟), 1602년에 동묘(東廟)를 세우고 국가행사로 제사를 지내면서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이 무렵 영동에도 하고자리에 관왕묘가 세워졌다.

그러던 것이 1908년에 나라에서 관왕묘의 제사를 폐지하자 지방의 관왕묘는 거의 없어져버렸는데, 영동에 아직 이 관왕묘가 남아 있는 것은 당시 영동군수의 꿈에 관우가 나타나서 관왕묘의 복원과 제사를 원하므로, 군수가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옮기고 12장신당이라고 부르게 한 덕분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곳을 신당이 있는 골짜기라 하여 당곡이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관왕묘의 제사는 원래 관행제(官行祭)였으나, 이곳 당곡리로 신당을 옮긴 뒤부터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동제로 지내고 있다. 매년 제관을 선정하여 음력 정월 14일 밤에 유교식으로 치른다.

이때 제물은 제전(祭田)을 경작하는 사람이 준비한다. 이것은 관우를 무신(巫神)으로 섬기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민간신앙이 역사적 사실성보다는 신화적인 실재관(實在觀: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예이다.

참고문헌

  • -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 - 「충청북도민속연구」(김영진, 『청주대학교논문집』 7, 197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