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지 ()

인문지리
문헌
19세기 중반, 평안도 영변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이칭
이칭
영변부읍지(寧邊府邑誌)
문헌/고서
편찬 시기
19세기 중반
편저자
평안도 영변부(寧邊府)
권책수
1책 48장
권수제
영변지(寧邊誌)
판본
필사본
표제
영변부읍지(寧邊府邑誌)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영변지』는 19세기 중반 평안도 영변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 48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여지도서』 수록본에 비해 구성과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특히 사회, 경제, 군사, 인물 관련 내용을 세밀하게 나누어 기재하였으며, 영변의 역사와 고적을 자세히 다루었다. 영변 지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여 주는 가치 있는 자료이다.

정의
19세기 중반, 평안도 영변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저자 및 편자

『영변지(寧邊誌)』는 평안도 영변부(寧邊府) 지금의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편찬하였다.

서지사항

1책 48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0.2㎝, 가로 21.3㎝이다. 표제는 ‘영변부읍지(寧邊府邑誌)’이고, 권수제는 ‘영변지(寧邊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1이다. 이 밖에 영변 지역에 대한 관찬 읍지로는 1894년 상송령에 의한 주2가 있으며, 주3 등의 도지에도 영변 지역의 읍지가 수록되어 있어 자료적으로 상호 보충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주4는 한국유학연구회가 1970년대에 본 읍지를 필사 영인한 것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19세기 중엽 『관서지(關西誌)』 편찬 과정에서 이루어진 영변부의 관찬 읍지이다. 연방(蓮榜) 항목에 기록한 곽이헌(郭履憲)이 1843년(헌종 9) 생원시에 입격한 것으로 보아, 본 읍지의 편찬 시기는 19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구성과 내용

수록 항목은 연혁(沿革), 관직(官職), 성지(城池), 형승(形勝), 산천, 군명(郡名), 고적(古蹟), 고사(古事), 잡기(雜記), 신이(神異), 제영(題詠), 명환(名宦), 환적(宦蹟), 충효열(忠孝烈), 인걸(人傑), 행의(行義), 과공(科貢), 연방, 문음(文蔭), 무과(武科), 무남(武南), 분야(分野), 강역(疆域), 방부(坊部), 호구(戶口), 풍속(風俗), 학교, 사우(祠宇), 병제(兵制), 봉수(烽燧), 역체(驛遞), 누정(樓亭), 공서(公署), 창고(倉庫), 불우(佛宇), 원정(院亭), 교량천정지(橋梁泉井池), 토전(土田), 토산(土産), 공부(貢賦), 교방(敎坊), 관속(官屬), 수미(收米), 전세미(田稅米), 발참(撥站), 영애(嶺阨), 진도선척(津渡船隻), 관방직품(官方職品), 향임(鄕任), 환총(還摠), 제언(堤堰), 연대(烟臺), 각면리호수(各面里戶數), 관름(官廩) 등으로 구성하였다. 1760년(영조 36)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수록본에 비해 항목이 다양하고 정보량도 증가하였다.

의의 및 평가

『여지도서』 수록본과 비교하여 구성과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하며, 특히 사회와 경제, 군사, 인물 관련 내용을 세밀하게 나누어 서술하였다. 영변의 역사와 고적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는데, 고적 항목에 단군의 등천굴(登天窟)과 동명왕의 우발수(優渤水), 행인국 설화 등을 기록해 두었다. 고사 항목에서는 철옹성(鐵瓮城)에 관련한 고려 거란몽골, 조선 왜란, 이괄의 난, 홍경래의 난 등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19세기 중반에 편찬된 읍지이지만, 영변 지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전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읍지총람: 조선시대사찬읍지 51: 평안도 7』(한국인문과학원, 1991)
『한국지리지총서: 읍지 1~20』(아세아문화사, 1982~1986)
주석
주1

청구기호: 규 17504.

주2

국사편찬위원회 사료관 도서.

주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2종. 청구기호: 규 12168, 규 12169.

주4

청구기호: 고915.84-Y43.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박인호(금오공과대 교수, 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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