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표지에는 ‘寧邊府邑誌(영변부읍지)’로 되어 있다. 책머리에 목록(目錄)이 실려 있다. 이어서 ‘무호질(無乎秩)’이라는 제하에 파수(把守)·도서(島嶼)·전망(箭網)·어염(漁塩)·목장(牧場)·입방처소(入防處所)·방군(防軍)·진보(鎭堡) 등 항목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타 읍지에 일반적으로 수록되나 영변에서는 기록할 내용이 없는 항목의 제목만을 별도로 열거하여 놓은 것이다. 여기에서 내륙 산간 지역에 위치한 영변의 지역 특성이 잘 드러난다.
내용은 연혁(沿革)·관직(官職)·성지(城池)·형승(形勝)·산천(山川)·군명(郡名)·고적(古蹟)·고사(古事)·잡기(雜記)·신이(神異)·제영(題詠)·명환(名宦)·환적(宦蹟)·인물(人物)·충효열(忠孝烈)·인걸(人傑)·행의(行義)·과공(科貢)·연방(蓮榜)·문음(文蔭)·무과(武科)·무남(武南)·분야(分野)·강역(疆域 : 邑名·距邑東西南北及監兵營京城里數)·방부(坊部 : 各坊距邑里數·每坊洞里數)·호구총(戶口摠)·풍속(風俗)·학교(學校)·사우(祠宇)·병제(兵制)·군총(軍摠)·봉수(烽燧)·역체(驛遞)·누정(樓亭)·공서(公署)·창고(倉庫)·불우(佛宇)·원정(院亭)·교량천정지(橋梁泉井池)·토전답총(土田畓摠)·토산(土産)·공부(貢賦)·교방(敎坊)·관속(官屬)·수미(收米)·전세미(田稅米)·발참(撥站)·영애(嶺阨)·진도선척(津渡船隻)·관방직품(官方職品)·향임(鄕任)·환총(還摠)·제언(堤堰)·연대(烟臺)·각면리호수(各面里戶數)·관름(官廩) 등으로 되어 있다.
각 항목의 설정 이유를 서문 형식으로 하여 항목의 첫머리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 시대 읍지 가운데 주로 서북 지방의 사찬 읍지들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연혁조에는 읍호를 영변으로 개칭한, 세종대 이전에 이 지역에 설치되었던 위주(渭州)·무주(撫州)·연주(延州)의 연혁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또한 성지에도 세 고을의 치소(治所)였던 위주성(渭州城)·무주성(撫州城)·철옹성(鐵甕城)이 수록되어 이 지방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적조에는 단군(檀君)의 탄강처(誕降處)로 전해오는 묘향산(妙香山)향로봉(香爐峯) 아래 등천굴(登天窟) 등에 관한 설명과 단군 설화 및 주몽[東明王]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고사조에는 철옹성에 관련된 사적들을 시대 순으로 기록하였다.
특히 인조대 이괄(李适)의 난과 순조대 홍경래(洪景來)의 난 당시의 사실이 비교적 자세하게 실려 있다. 현존하는 영변 지역의 유일한 개별 읍지로서 고적·고사·잡기·명환 등 역사적인 내용이 상세하여 19세기 초까지의 이 지역의 역사와 지역 사정을 전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1923년 한국유학연구회에서 펴낸 ≪영변지≫는 이 읍지를 필사하여 복제한 것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