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선조 37) 중건하였고, 1959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각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7칸의 명륜당,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건축형태는 경사지에 일축선(一軸線) 전학후묘(前學後廟) 직렬형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전퇴가 없는 폐쇄형 건물이고,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전퇴가 개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 전적 가운데 『경남유안(慶南儒案)』 · 『영산향안록(靈山鄕案錄)』 · 『율농실기(栗儂實記)』 · 『창녕현지(昌寧縣誌)』 등은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