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흥녕사터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징효대사의 탑비.
내용
통일신라의 국사인 징효(澄曉)의 휘는 절중(折中)이고 휴암(鵂嵓, 현재의 황해도 봉산군) 사람이다. 자와 속성은 비문의 마멸로 알 수 없다. 이밖에도 비문에는 징효의 가계, 826년(흥덕왕 1)에 진전법사(珍傳法師)를 사사하고 19세에 장곡사(長谷寺)에서 구족계를 받아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하고 교화한 것, 75세 때인 901년(효공왕 5)에 입좌하여 입멸하였음을 기록하였다. 또 효공왕이 징효대사와 보인(寶印)이라는 탑명을 증시(贈諡)한 것 등을 적고, 말미에 대사의 공덕을 기리는 명문을 새겼다.
이 비는 통일신라의 징효대사를 기리는 탑비이지만 국가가 바뀌는 어지러움 때문에 이미 지었던 것을 나중에 새겨서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글씨는 통일신라와 고려 초에 유행한 초당의 필법으로 구양순풍(歐陽詢風)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6-보물 4-(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한국금석총목』(장충식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4)
- 『한국의 미』15-석등·부도·비-(임창순 감수, 중앙일보사, 1983)
- 『한국서화인명사서』(김영윤, 예술춘추사, 1959)
- 『朝鮮金石總覽』上(京城 : 朝鮮總督府, 191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