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 예술·체육
  • 유적
  • 국가문화유산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흥녕사터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징효대사의 탑비.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선주선 (서예가)
  • 최종수정 2023년 06월 22일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미디어 정보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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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흥녕사터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징효대사의 탑비.

내용

197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2.77m, 너비 1.14m. 944년(혜종 1)에 건립된 이 비의 형식은 귀부(龜趺)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螭首)로 덮은, 신라 · 고려의 전형적인 석비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비신 일부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뿐 완전한 형태로 남아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자경은 2.5㎝로 최언위(崔彦撝)가 지은 내용을 최윤(崔潤)이 쓰고 전액도 하였으며, 각자는 최환규(崔奐規)가 맡았다.

통일신라의 국사인 징효(澄曉)의 휘는 절중(折中)이고 휴암(鵂嵓, 현재의 황해도 봉산군) 사람이다. 자와 속성은 비문의 마멸로 알 수 없다. 이밖에도 비문에는 징효의 가계, 826년(흥덕왕 1)에 진전법사(珍傳法師)를 사사하고 19세에 장곡사(長谷寺)에서 구족계를 받아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하고 교화한 것, 75세 때인 901년(효공왕 5)에 입좌하여 입멸하였음을 기록하였다. 또 효공왕이 징효대사와 보인(寶印)이라는 탑명을 증시(贈諡)한 것 등을 적고, 말미에 대사의 공덕을 기리는 명문을 새겼다.

이 비는 통일신라의 징효대사를 기리는 탑비이지만 국가가 바뀌는 어지러움 때문에 이미 지었던 것을 나중에 새겨서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글씨는 통일신라와 고려 초에 유행한 초당의 필법으로 구양순풍(歐陽詢風)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 『문화재대관』6-보물 4-(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 『한국금석총목』(장충식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4)

  • - 『한국의 미』15-석등·부도·비-(임창순 감수, 중앙일보사, 1983)

  • - 『한국서화인명사서』(김영윤, 예술춘추사, 1959)

  • - 『朝鮮金石總覽』上(京城 : 朝鮮總督府,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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