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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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서예
유적
문화재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흥녕사터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징효대사의 탑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寧越 興寧寺址 澄曉大師塔碑)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77년 08월 22일 지정)
소재지
강원 영월군 무릉법흥로 1352 (무릉도원면, 법흥리)
목차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흥녕사터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징효대사의 탑비.
내용

197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2.77m, 너비 1.14m. 944년(혜종 1)에 건립된 이 비의 형식은 귀부(龜趺)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螭首)로 덮은, 신라 · 고려의 전형적인 석비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비신 일부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뿐 완전한 형태로 남아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자경은 2.5㎝로 최언위(崔彦撝)가 지은 내용을 최윤(崔潤)이 쓰고 전액도 하였으며, 각자는 최환규(崔奐規)가 맡았다.

통일신라의 국사인 징효(澄曉)의 휘는 절중(折中)이고 휴암(鵂嵓, 현재의 황해도 봉산군) 사람이다. 자와 속성은 비문의 마멸로 알 수 없다. 이밖에도 비문에는 징효의 가계, 826년(흥덕왕 1)에 진전법사(珍傳法師)를 사사하고 19세에 장곡사(長谷寺)에서 구족계를 받아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하고 교화한 것, 75세 때인 901년(효공왕 5)에 입좌하여 입멸하였음을 기록하였다. 또 효공왕이 징효대사와 보인(寶印)이라는 탑명을 증시(贈諡)한 것 등을 적고, 말미에 대사의 공덕을 기리는 명문을 새겼다.

이 비는 통일신라의 징효대사를 기리는 탑비이지만 국가가 바뀌는 어지러움 때문에 이미 지었던 것을 나중에 새겨서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글씨는 통일신라와 고려 초에 유행한 초당의 필법으로 구양순풍(歐陽詢風)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6-보물 4-(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한국금석총목』(장충식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84)
『한국의 미』15-석등·부도·비-(임창순 감수, 중앙일보사, 1983)
『한국서화인명사서』(김영윤, 예술춘추사, 1959)
『朝鮮金石總覽』上(京城 : 朝鮮總督府, 1919)
집필자
선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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