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군읍지(永柔郡邑誌)』는 평안남도 영유군(永柔郡) 지금의 [평원군 일부]에서 편찬하였다.
1책의 필사본이다. 장정은 주1이고, 표지 재질은 문양이 없는 황지(黃紙),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표제는 ‘영유읍지(永柔邑誌)’이고, 권수제는 ‘영유군읍지’, 판심제는 ‘영유군’이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이며, 본문은 반엽(半葉), 10행(行), 자수부정(字數不定)이다. 조선총독부도서지인(朝鮮總督府圖書之印)과 서울대학교 도서, 참사관실(參事官室) 등의 인장이 찍혀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영유군의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강역(疆域), 연혁, 성지(城池), 방리(坊里), 군명(郡名), 풍속(風俗), 형승(形勝), 산천, 누정, 사묘(祠廟), 공서(公署), 창신자(倉信者), 학교, 고적(古蹟), 직역(職役), 관속(官屬), 병제(兵制), 봉수(烽燧), 해망(海望), 역체(驛遞), 교량(橋梁), 토산(土産), 토전(土田), 공부(貢賦), 교방(敎坊), 원정(院亭), 사찰, 호구(戶口), 인물, 효열 등으로 구성하였다.
특기할 사항은 사묘 항목에 건물의 칸수와 제기(祭器)의 종류, 수량을 적었고, 학교 항목에는 건물의 칸수에 이어 몇 가지 예규(例規)를 기록하였다는 점이다. 직역 항목에는 각소각고(各所各庫) · 도감(都監) · 고자(庫子) · 방자(房子) · 창직(倉直) 등의 직책을 다양하게 기록하였다.
토전과 공부, 호구 항목에 사회경제적 상황을 잘 담고 있어 19세기 영유군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다. 1872년(고종 9)과 1895년(고종 32)의 주2에 수록된 「영유읍지」와 1895년의 주3 등과의 비교를 통해 19세기 영유 지역과 읍지의 시계열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