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포항 오덕리 애은당 고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가족들이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 사용했던 포항 덕동마을의 주택이다. 임진왜란 이후 정문부가 고향인 진주로 돌아가면서 손녀사위였던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壃)에게 물려주었으며, 이를 계기로 덕동마을이 이강을 입향조로 하여 여강이씨(驪江李氏) 집성촌을 이룬 계기가 되었다. 좌우가 반전된 ㄱ자형의 안채와 ㅡ자형의 사랑채, 고방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으나 후대에 중수되면서 건립 당시의 모습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정의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농포 정문부의 가족들이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 사용했던 포항 덕동마을의 주택.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으며 우측에서부터 한 칸은 마루, 좌측의 두 칸은 온돌방이다. 사랑채 부분의 지붕을 조금 높이고, 전면 처마 밑으로 비교적 넓은 폭의 마루를 두었다. 사랑채 중앙칸에 ‘애은당’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사랑채와 서쪽으로 연접(連接)하여 안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는 문간(門間)을 두어 전체적으로는 정면 5칸의 ㅡ자형 맞배지붕 건물이 되었다.
문간을 들어서면 좌우가 반전된 ㄱ자형의 안채가 있다. 정면에는 중앙 칸에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한 칸씩 두었다. 꺾음부에는 두 칸의 부엌을 두었고, 아래쪽으로는 마루를 깔고 판벽을 두른 두 칸의 곳간이 연결되어 있다. 지붕은 양쪽 끝을 모두 맞배지붕으로 구성하였는데, 대청 부분의 지붕이 다른 곳보다 높다.
안채의 동쪽으로는 정면 두 칸 규모의 초가지붕인 고방(庫房)채가 면해 있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안마당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과 서쪽 마당에 각각 별당(別堂)과 방앗간을 두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경상북도, 『문화재대관』(경상북도, 2003)
논문
- 박성준, 『포항 덕동마을의 전통경관 해석 및 재현에 관한 연구』(영남대학교 건축학과 석사학위논문, 2015)
- 이광노·전봉희, 「조선시대 씨족마을의 건축적 특성에 관한 연구」(『대한건축학회논문집』 7-5, 대한건축학회, 1991)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www.heritage.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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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대문을 여닫기 위하여 대문의 안쪽에 있는 빈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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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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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광’의 원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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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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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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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지방에 있는 감영(監營),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의 병영(兵營)과 수영(水營) 따위에 속한 문관과 무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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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 시대에, 함경도에 있는 북병영에 속한 정육품 무관 벼슬.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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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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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당우(堂宇)의 이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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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사랑으로 쓰는 집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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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널빤지로 만든 벽.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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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물건을 간직하여 두는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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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몸채의 곁이나 뒤에 따로 지은 집이나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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