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숭지(崇之). 아버지는 오중화(吳仲華)이다.
처음에는 음보로 벼슬에 올랐으나 1382년(우왕 8) 진사·생원시에 연이어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좌헌납(左憲納)을 역임하고 곧 전교부령에 승진하였으며, 우사간대부를 거쳐 1407년(태종 7) 형조참의, 다음해 병조·이조참의를 지냈다. 그뒤 충청도관찰사·한성부윤·판한성부사 등을 지냈으며, 1422년(세종 4) 성절사(聖節使)로 북경(北京)을 다녀온 뒤 개성부유후에 임명되었다.
다시 공조판서·예문관대제학·함길도감사 등을 역임하고, 1430년(세종 12) 의정부참찬에 임명되었으며 다음해 대사헌이 되었다. 그뒤 중추원사·예문관대제학·지중추원사·판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1436년 안석과 지팡이를 받았으며, 1443년 종을 때려 죽여 경기도 죽산현(竹山縣)에 안치되었다가 방환되기도 하였다. 승정원·사헌부·사간원에 있으면서 임금과 신하들을 깨우쳤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