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겸(王謙)’으로도 표기되어 있다. 신라말 고려초의 강릉지방 호족인 명주장군(溟州將軍)김순식(金順式)의 아들이다. 본래의 이름은 ‘장명(長命)’이었다.
순식이 고려 태조에게 귀부함에 따라 928년(태조 11) 정월에 군사 600명을 거느리고 개성에 와서 숙위하였다. 뒤에 순식이 무리를 거느리고 태조에게 조회하여 왕씨(王氏)의 성을 하사받을 때 장명은 ‘염’이라는 이름을 받고 원보(元甫)에 임명되었다.
936년(태조 19) 9월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하여 후백제왕 신검(神劍)의 군대와 일리천(一利川 :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동쪽의 내)에서 싸울 때 대상(大相)의 관직에 있던 왕렴은 긍준(兢俊)·왕예(王乂)·금필(黔弼) 등과 함께 철갑기병 2만명과 보병 3,000명 및 흑수(黑水)·철리(鐵利)계통의 날랜 기병 9,500명을 이끌고 중군이 되어 후백제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후삼국이 통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