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75.3㎝, 입지름 44㎝. 용뉴(龍鈕)는 목줄기 일부가 결손되었으며, 매우 빈약하게 보이나 용통(甬筒)은 상하단에 연판문(蓮瓣文)을 둘러 장식하는 등 비교적 섬세한 조식(彫飾)을 하고 있다.
상하대는 서로 다른 무늬를 넣었는데 대상(帶狀) 위의 변두리에 영락대(瓔珞帶)를 두르고 있음은 동일하다. 상대에는 유운(流雲) 속에 보화(寶花)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 나는 비천상을 장식하였고, 하대에는 반원권문(半圓圈文)을 연속시켜서 바탕에는 보상화문(寶相花文)을 채워 넣었다.
반원권 안에는 중앙에 반화형(半花形) 보상화문을 크게 배치하고 밖으로 동심원상에 여의두문(如意頭文) 같은 화판(花瓣)을 둘렀다. 상대의 하단에 붙여서 설치된 4개소의 유곽(乳廓)은 하대의 의장과 유사하고, 그 안에는 6엽연화좌(六葉蓮花座)에 얕게 돌출된 9개의 유두(乳頭)가 들어 있다.
종신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 무릎을 꿇고 요고(腰鼓 : 장구)와 횡적(橫笛)을 연주하는 2구의 비천상이 유려하게 새겨졌다. 자방(子房)을 2개 표현하고 8엽연판문을 두른 당좌(撞座)는 비천 사이의 2개의 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이 범종은 신라 범종의 전형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 특히 비천상이라든지 유곽·하대 등의 의장양식이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어떠한 경로로 일본에 전해지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