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학성동 북쪽인 반구동 구교마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52년(효종 3)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당시에는 대성전, 동서무, 동서재만 세워졌다가, 1711년(숙종 37)에 부사 박징(朴澄)이 유생과 협력하여 문루 5칸을 창건하여 작신루(作新樓)라 하였다가 1796년에 청원루(淸遠樓)로 바뀌었다. 1800년 이후 26번 고쳤음에도 배치의 기본 틀은 유지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각 4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신문(神門), 6칸의 명륜당, 각 4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6칸의 청원루, 5칸의 전사청(典祀廳), 전교실(典校室), 고자실(庫子室)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앞에 제향을 두는 대성전을 두고 강학을 하는 명륜당을 뒤에 두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형태이다. 주요 건물들을 남북과 동서축으로 직각 교차하게 배치하였다.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홑처마 익공 양식의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홑처마 익공양식의 팔작지붕이다. 정문인 청원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익공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는 이 향교에서 한문서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24명이 담당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97년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