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지구 전투

  • 정치·법제
  • 사건
  • 현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침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북위 37도선까지 후퇴하고 있을 때, 미 제10군단 예하의 미 제2사단이 원주 남쪽의 관설리와 서곡리, 홍등리 일대에서 북한군 제2사단·제9사단·제31사단의 혼성병력을 격퇴하고 원주를 탈환한 전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대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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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침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북위 37도선까지 후퇴하고 있을 때, 미 제10군단 예하의 미 제2사단이 원주 남쪽의 관설리와 서곡리, 홍등리 일대에서 북한군 제2사단·제9사단·제31사단의 혼성병력을 격퇴하고 원주를 탈환한 전투.

내용

전투기간은 1951년 1월 6일부터 1월 12일까지이다.

이 전투에서 미 제 2사단은 미 제 37포병대대의 지원하에 북한군 3개 사단과 1주일 간의 공방전을 전개하여 원주를 탈환하였다(구체적 서술). 또 미 2사단은 그곳에서 영주와 안동지역으로 침투하려는 북한군 유격부대의 후방지역 침투를 봉쇄하였다. 아울러 원주-제천 축선과 원주-충주 축선의 주요 도로를 확보하였다. 국군 제3군단과 미 제10군단의 전열을 정비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원주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시련기에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고, 아군이 공세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조성하였다. 북한군과 중공군은 이 전투를 고비로 공격을 중지하고 일단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참고문헌

  • - 『한국전쟁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1)

  • - 『한국전쟁 요약』(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6)

  • - 『소부대전례』(육군본부,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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