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문서의 형태로 종가에 보관되어 오던 중 18세기 화재로 인해 소실될 때 그 중 일부를 수습하여 1804년(순조 4)우재악(禹載岳) 등이 첩장한 것이다. 규격은 세로 42㎝, 가로32, 장수는 앞뒤 표지 포함 20장 38쪽이다. 관련문서는 우배선의 교지(敎旨) 10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증교지 각 1점, 정인홍의 간찰, 선조말엽 주요 관원들의 성명·관직명·주소 등이 적힌 각택기 등 13점이다.
『화원 우배선 의병진 군공책』에는 부하병사들의 개별적인 군공기록인 「의병군공책(義兵軍功冊)」, 명군의 임전수칙인 「중조경략병부약법(中朝經略兵部約法)」 등을 비롯하여 우배선이 창의, 기병과 함께 의병활동 전개과정에서 만들어진 상하급 관원 사이에 왕래된 첩·소지·전령·서목·장계·고목·상서초·계본초·첩정(牒呈) 등 12종 20여건의 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자료에서 볼 때 우배선은 1592년 10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 7개월에 걸쳐 30여 회 전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투지역은 대구를 중심으로 화원과 송림리, 감물천, 월배 주변에서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우배선을 포함한 89명의 의병이 올린 전공은 참살 63명, 사살 604명, 작살 110명으로 작은 의병부대로서의 전과로는 엄청난 수이다.
「의병군공책」은 후손들에 의해 개필되거나 첨삭된 흔적이 거의 없고, 또 문서에 등재된 인명들을 추적해 볼 때 우배선과 함께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에 등재된 자도 많았다. 특히 한미(寒微)한 가세에서 창의한 우배선이 조정으로부터 의병활동의 군공포상으로 합천군수 등 여러 관직이 제수되고, 또 선무원종공신 일등에 책록된 근거는 이 책에 실린 관련 자료들이라 하겠다.
이 자료는 대구광역시 달서구단양우씨 열락당 종중과 경기도 의왕시우국일이 소유하고 있다.
이 자료는 임진왜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의병군공책」은 유일한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戰功) 보고서로서 우배선의 의병활동에 대한 구체적 전개과정, 그의 전투 기술적인 양상, 그의 의병진(義兵陣)이 대구지역의 의병활동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