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초기에 ≪유기≫ 100권을 편찬한 바 있는데, 이것은 600년(영양왕 11)에 태학박사(太學博士) 이문진(李文眞)에 의하여 ≪신집 新集≫ 5권으로 개수되었다. ≪유기≫는 그 명칭으로 보아 전승되어오는 과정에서 생겨진 명칭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종래 구전되어오던 고구려 초기의 여러 가지 종류의 신화·전설이나 왕족의 계보 등을 모아 편찬된 듯한데, 그 체재도 중국식 정사(正史) 체계와는 달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편찬 시기는 대체로 4세기 후반의 소수림왕 때로 추측하는 경우가 많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기사가 미천왕 때까지는 설화적인 것이 많은 데 비하여 그 뒤 고국원왕·소수림왕 때부터는 이러한 성격의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역사서술에 있어 어떤 단층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뒤 고구려사회의 발전에 부응하여 전반적으로 역사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종래의 ≪유기≫를 개수할 필요성이 생겨서 ≪신집≫이 편찬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