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운여(雲汝), 호는 이재(頤齋)·난실(蘭室). 아버지는 직장 유평주(兪平柱)이며, 어머니는 이길모(李吉模)의 딸이다.
1826년(순조 2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설서·지평·교리를 거쳐 1829년에는 진하서장관(進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그 뒤 참의·참판·승지·대사간 등 요직을 지냈고, 안변·경주·양양·강계·회양·파주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또, 1858년(철종 9) 이후에는 강화유수·도총부도총관·의정부우참판에 임명되었고, 1862년 임술민란(壬戌民亂)이 일어난 뒤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민심수습과 치안유지에 힘썼다.
고종 즉위 후에도 대사헌·한성부판윤·예조판서 등 고위직에 등용되었으며, 1864년 사은 겸 동지정사(謝恩兼冬至正使)로 중국에 다녀왔다. 1867년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고, 시호는 효정(孝靖)이다.